그게 무슨 소용이었나
새카맣다. 내 피부가 이렇게 잘 타는 줄은 몰랐다. 한번도 태울 일은 없었으니까. 한국에선 예쁜 사람들이 죄다 하야니까 태울 생각 같은 건 못했다. 노란 피부를 조금이라도 가려보려고 한 호수 밝은 화장품을 발랐으면 발랐지.
새카맣게 탄 팔을 내려다보면서 ‘그게 무슨 소용이었나’ 하고 생각한다. 생각 외로 나는 까무잡잡한게 잘 어울린다. 내 피부지만 디게 이쁘다. 비키니 라인만 빼고 온 몸이 고르게 탄데다 코코넛 오일 덕분인지 햇빛이 닿으면 윤이 나는 것 처럼 반짝거린다. 마치 가을에 산길에서 밤톨을 발견한 엄마가 가시에 찔리지 않게 발로 주섬주섬 밤톨을 밟아 열고서 ‘꽉 찼네’ 하고 웃으면서 속에 든 알밤을 꺼내 들고는 옷에 슥슥 문대고 ‘이거 봐라’ 하고 건낸 색이다.
아무리 이쁜 밤색이래도 엄마는 싫어할게 뻔하다. 엄마는 늘 내가 타는 걸 싫어했다. 어릴 때 야외 수영장이라도 갈라치면 엄마는 아유, 작년에 탄 것도 아직 안돌아 왔는데 오늘은 또 얼마나 탈랑고. 매년 똑같은 말을 했다. 엄마는 그 때 만큼은 아낌없이 선크림을 뿌직뿌직 짜서 내 온 몸에 치대발랐다. 온 몸이 휘청거렸다. 선크림 때문에 몸이 무거울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탄 게 더 잘 어울렸다니. 세상에 아직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