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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27. 2023

세뱃돈 주는 식당

명절이면 어머님댁에서 전을 부치고 동서들과 나가서 저녁을 먹는다.


형제들끼리 오랜만에 모이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만들어진 문화였다. 먼저 남편들이 나가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우리끼리 나가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이 설이나 추석이기에 마음 놓고 그 시간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동서들끼리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일이 갈수록 즐거웠다.


어쩌다 남편으로 맺어진 인연이 동서들이었다.

서로 다른 환경, 다른 관심사, 다른 성격이지만 다들 성격이 좋고, 나보다  살씩 어려서 대화가  통한다. 무엇보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다.


둘은 술을 좋아한다. 취할 때까지 마셔본  없는 나는, 둘의 술부심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냥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신기하다. 둘은 집이 가깝기도 해서 종종 만나 술을 신다고도 했다.


설 전날, 1차로 참치 집에 가서 단품으로 시켜 먹었다. 우리는 곧 2차를 갈 것이기 때문에, 참치집에서 배를 채우지 않기로 했다. 앙증맞은 접시에 부위별 참치가 놓여 나왔다. 아이들 없이 먹는 우리들만의 식사라니? 감격스러웠다. 잔을 부딪히자 우리의 기분을 아는 듯 실로폰 소리가 났다.


한 점씩 음미하며 먹다가 마지막 부위가 남으면, 아이 셋을 키우는 둘째 동서에게 양보했다. 엄마의 마음은 엄마가 안다고 좋은 건 다 둘째 동서에게 주고 싶었다. 참치 한 점에 말 못 한 노고를 얹어 보냈다. 우리의 마음을 가게 주인도 읽었는지, 소주 한 병을 더 시키자 금가루를 가득 넣어 갖다 주었다. 그리고 핸드폰 조명을 켜셔 그 빛 위로 소주병을 흔들어 올렸다. 그러자 금빛 가루가 소용돌이치며 빛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작은 이벤트였지만 사이키 조명을 켠 듯 신이 났다.


위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금주를 또 동서에게 주려고 했는데, 형님 드시라며 내 술잔에 따랐다. 술로 우애가 빛났다. 그렇게 가볍게 먹고 2차로 근처의 야키토리로 향했다.


들어가는 입구에 가게 이름인

<꽂정 : 정성을 다해 꼬치를 꽂다>의 뜻이 적혀 있었다.

닭가슴살마저도 촉촉하고 원래 바삭한 줄만 알았던 닭껍질이 부드러웠다. 짭쪼름한 양념과 어울어져 술이 꿀덕꿀덕 넘어갔다.


동서가 평소 하이볼이 궁금해 먹어보고 싶었다며 주문했다.

조합에 따라 다양한 하이볼이 나오기에 이곳의 하이볼도 기대했다.

드디어 우리가 시킨 잭 허니 하이볼이 나왔다. 달달한 맛이 일품이었다.


소주파인 동서는 한 모금 마셔보더니

"아. 이제 무슨 맛인지 알겠어요. 근데 저는 한 잔 경험한 걸로 된 것 같아요. 카페음료면 좋을 것 같아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한 잔 마시면 딱 좋은 음료. 음식들이랑은 다른 술을 마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는 소주를 시켰다.


나는 술 같지 않아 향기로워 좋았는데, 술취향이 확고한 그녀는 이건 카페에서 먹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감상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웃음이 났다.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가게를 나섰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다 하고 가려는데 가게 주인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며 예쁜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글이 담긴 종이와 천 원 자리가 들어있었다.

세뱃돈이었다.

어른이 되어 세뱃돈을 받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의 세뱃돈이었다.

.


 순간, 베트남 여행에서 숙소 호스트에게 받은 세뱃돈도 떠올랐다. 베트남을 떠나는  받았던 감동이었기에  년이 지나 기억이 났다.


느닷없는 순간에 받은 위로와 행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과거의 경험에 대해 평가를 내릴 때, 가장 절정을 이루었을 때와 마지막의 경험을 평균하여 결정한다는 <피크엔드법칙>이 있다.


그날의 맛있는 음식도 절정이었는데 마지막 계산에서 세뱃돈을 받나니...

매 명절마다 떠오를 경험이었다.  


꽂정은 그렇게 우리 마음에 정을 꽂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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