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일 차 곧 100일 아기
신생아 황달로 병원 응급실 뺑뺑이 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쫑알이가 곧 100일이다. 쫑알이가 100일이라는 건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출근을 안 한지가 100일이 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회사만 안 다니면 갓생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회사를 다니던 안 다니던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일 때도 되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쫑알이가 조금만 더 자라서 육아가 좀 편해지면, 아빠도 아빠의 삶을 잘 살겠다'라고 갓생 살기를 미루어왔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알고 있다. 쫑알이를 핑계 삼아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뿐. 그리고 쫑알이가 자라면 더 편해지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힘들어질 뿐이라는 사실.
이제 뒤집기를 연습하기 시작할 시기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쫑알이는 몸 쓰기에는 별 관심이 없어하는 것 같다. 터미타임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고, 뒤집기도 아직 조짐이 없다. 그나마 즐거운 점은 부지런히 손쓰기를 배우고 있다는 점이다. 손을 뻗어서 문어 인형을 잡으려 하는데 아직 손가락이 마음처럼 안 움직이는지 몇 번 하다가 짜증을 내기도 하고, 아빠 얼굴을 몇 번이나 할퀴어보거나 꼬집어보거나 한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것저것 다 잡아보려 할 것 같다.
쫑알이는 태어나자마자 눈 떴던 아기인 만큼 몸으로 하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걸 잘하는 것 같다. 책도 잘 보는 것 같고, 여기저기 사진을 걸어놓으니 누군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본다. 거실에서 키우는 스킨답서스는 신생아 때부터 무척 즐겨봤다. 아래에서 보면 안 보이는 게 많은지, 높이 안아주지 않으면 찡얼거리기도 많이 한다.
이제 옹알이도 틔이고 있다. 그동안은 울음과 구별이 잘 안 되는 소리를 냈는데. 이제 '갸악' 같이 자음이 들어가는 다른 소리도 꽤 내고.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음 오와앙' 하고 꽤 오래 말하듯 소리를 내기도 한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좋을 때 옹알이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쫑알이가 '우엉' 하고 옹알이를 하면 나도 똑같이 '우엉'하고 대답해 준다. 보통은 의미 없는 것 같지만 가끔은 알아들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내일모레면 100일이지만, 흔히들 얘기하는 100일의 기적은 아직 소식이 없다. 자는 듯 마는 듯하는 아기에게 수유하는 '꿈수'를 밤 11시에 아내가 한번 새벽 4시 수유에 내가 한 번 준다. 조금 늦잠이라도 잘라면 시간 맞춰서 울어주는 쫑알이 덕에 오늘도 새벽 수유를 잊지 않았다.
며칠 전 새벽 3시에 일어나 수유를 하고 나니 잠이 다 깼다. 날이 추워져 운동을 쉬었던 탓이고, 밖에 나갈 일이 없어 활동량도 없어 잠도 설치던 때였다. 수유도 마쳤겠다. 쫑알이가 일어나려면 3시간은 남았고 하루 종일 육아로 피곤한 저녁도 아니며, 마침 일찍 잔 날이었다. 이 소중한 시간이 아까웠기에 결정해 버렸다. 이제 새벽은 아빠의 시간이다. 아빠의 시간엔 앞으로 새벽 러닝을 한다.
새벽 4시, 0도의 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문을 나선다. 집 앞에 있는 한적한 러닝 코스는 이 시간에 아무도 없어서 한 시간을 뛰어 집에 돌아오기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다. 산책로 전부가 내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는 뿌듯함으로 달린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침입하지만, 발에 닿는 열기가 점차 차올라 가슴까지 닿는다. 100일이라고 쫑알이가 기적을 일으키길 기대하다니, 아빠 자격이 없다. 아빠가 새벽부터 러닝하는 게 100일의 기적이다. 기적은 내가 대신해줄게 지금처럼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