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히 세 근은 되고 남았다. 봉지가 묵직하다 싶었더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손에 쥐어 준다고 해도 넙죽 갖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도로 건네기도 난감하고. 받은 마음이 열 근은 더 무겁다.
녀석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이른 아침, 빌린 책도 반납할 겸 산책삼아 도서관을 갔는데 길 한 모퉁이 벤치에 어디선가 본 듯한 앳된 체구 하나가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다. 슬쩍슬쩍 보이는 검은 안경테, 좁고 얄팍한 어깨. 분명 영한이었다. 조심스레 번호를 눌렀다. ‘영한이 찾았다.’고.
녀석의 가출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과자봉지가 양 옆으로 나열된 슈퍼 안 좁은 틈새에 겁에 질린 채 서 있던 녀석 눈빛이 떠오른다. 손님이 올려둔 물건을 재빨리 계산하면서도 두려움에 졸아든 자신의 아들을 향해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는 주인아줌마. 그날 슈퍼는 좁은 틈새에 갇힌 어린 녀석이 창피함과 두려움에 납작하게 눌어붙어 금방이라도 증발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녀석이 집을 나간 것은 일주일 전이다. 집 나간 놈은 자식도 아니라며 역정을 내면서도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아주머니 얼굴은 이틀 사이 가뭄이 들어앉은 듯 말라버렸다. ‘고3 올라가는데 어디 있느라 집엔 오지도 않는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두부 한 모 사러 들른 슈퍼에서 한 시간 넘게 서 있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녀는 왜 짐작 못했을까. 언젠가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칠 수 있다는 것을. 녀석이 터질 듯한 공기들을 꾹꾹 누르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땐 밀고 나간 그 문으로 찬바람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이미 아이 마음이 멀어져 수습하기 어렵다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없었을까.
순했던 아니 순하게 참아냈던 영한이의 변화. 녀석의 반격이 시작된 것은 작년 가을부터다. 아주머니로부터 가게 안에 있는 소주 서너 병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말을 듣고도 또 그것을 가져간 사람이 그녀의 아들인 영한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도 무언가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다. 그러다 모의고사 시험에서 커닝한 게 알려져 영점처리 되었다는 소식 앞에선 서너 해 전, 주눅이 다닥다닥 붙은 듯 잔뜩 겁먹은 어린 눈빛이 떠올라 우려와 안쓰러움마저 들었다.
행복슈퍼, 그곳을 들를 때면 늘 조마조마했다. 부지런하고 싹싹한 성격 뒤에 가려진, 하나뿐인 아들 영한이의 명문대 입학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동네 사람이면 모르는 게 이상했다. 게다가 그녀 스스로 남편을 선택한 것도 남편이 서울대 출신인 게 한몫했다며 자랑삼아 이야기할 정도이니.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그녀 남편도 자신이 공부했던 시절을 들먹이며 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는데 영한이가 그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겠구나 싶었다. 나도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진 시험 때마다 꼬치꼬치 캐묻는, 는적는적한 그녀 입술이 부담스러워 사야 될 물건이 있어도 다음날로 미루거나 십오 분 여 거리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한 적도 많았다.
광대뼈가 불거진 마름모형 얼굴에 독수리처럼 매섭고 날카로운 눈매, 짧게 손질된 파마머리와 오렌지 톤 립스틱의 얄팍한 입술을 가진 그녀. 그녀가 영한이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 안개의 그물이라도 펼쳐놓은 듯 마음 대신 성적을 낚기 바빴고 행여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가게 안에 손님이 있건 없건 팔딱팔딱하고 상스러운 언어들로 아이를 옭아맸다. 그래도 영한이는 중학교 때까진 특목고를 진학할 만큼 공부도 곧잘 해 이대로만 하면 그녀가 원하는 명문대 입학은 따 놓은 당상인 듯 했다. 다만 아이 마음 밑바탕에 그려놓은 그림들이 슬픈 이끼처럼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그녀만 몰랐다.
길모퉁이 벤치 아래 흙먼지가 새까맣게 묻은, 한없이 움츠려 든 운동화 한 켤레. 녀석은 대체 어디를 그리 헤맸던 것일까. 가출하기 전날 엄마인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해 달라고 울부짖었다는데 외면했던 그녀. 그녀는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게 녀석을 위해서 한 행동이라고, 아이 앞날을 위해 모질게 몰아붙였을 뿐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내 욕심을 아이 마음인양 여긴 적이 많았다. 부모 되는 교육을 받아본 적 없이 얼떨결에 엄마가 됐다보니 틀 속에 아이를 끼워 맞추기만 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큰아이에게 ‘네가 첫 자식이다 보니 참 많이 부족하고 서툰 엄마였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영한이가 집으로 돌아간 후 슈퍼는 이틀 내내 문이 닫혀 있었다. 두부 한 모 사러 들른 슈퍼에서 한 시간 동안 서 있었던, 수심 가득한 그녀 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그날 아주머니는 자신으로 인해 영한이가 집을 나간 것 같다며 처음으로 후회하는 말을 했다. 아이 자존감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 날들을 이제야 돌아보고 있는지 모른다. 부모인 그들이 박은 말뚝에 아이 스스로의 말뚝까지 더해 상처가 깊어진 영한이. 영한이의 가출은 마디마디 옹이가 되어 그녀를, 그녀남편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철이 든다는말은 자식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아이 나이만큼, 아이와 부딪치는 시간만큼 부모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일 것이다. 문제아니 반항아니 하는 단어들도 바닥을 들여다보면 자식을 자기 틀에 가둬 놓고 키운 부모 탓이 아닌가 싶다.
언제였는지 행복슈퍼 간판이 바람에 흔들려 행복의 ‘복’자에서 기역받침이 날아간 적이 있다. 모퉁이가 들려 위태롭던 간판이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바닥에 떨어진 받침을 얼른 주워 다시 붙였는데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다. 달아나버릴 행복이기 전에 그녀가 한시라도 빨리 받침을 찾아내 제자리에 단단히 붙여놓았으면 싶다.
그녀가 내게 준, 영한이 좋아하는 사골을 끓이려다 생각나 더 샀다는 사태 세 근. 그것을 받아들고 집으로 오는데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묵은 염려 때문일 것이다. 닫았던 가게 문도 열었으니 아이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겠지. 안개 걷힌 그 자리에 조금씩 햇살이 스며드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