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둠이 곧 끝나리라는 걸 아는 것

무력함이 주는 자유

by 김지영

오늘은 십분 차이로 일출을 놓쳤다. 마지막 급 경사를 허겁지겁 뛰어올라 왔지만 야속하게도 산중턱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솟아오르는 동시에 신속하게 빛을 뿜어내며 자신의 모습은 강한 빛 속으로 감춰 버린 후였다.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순간은 놓쳤지만 빛에서 한순간 어둠에 휩싸이는 순간은 여러 번 맞이할 수 있었다.


산 중턱을 씩씩하게 달려나가는 기차 속에서는 특히 어둠을 자주 맞이하게 된다. 열차 안에는 어떠한 인공조명도 없었고 (밤에 타보지 않아, 부재한 것인지 켜지않은 것인지는 확인 불가) 터널에 들어서는 순간 기차에 탄 우리 모두는 한순간 완전한 암흑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하던 팀이 승리하는간처럼 동시다발적이며 뜨거운 환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지 않고 잘 달릴 수 있는지 혹은 어둠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그런 걱정은 누구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나는, 처음엔 웃었고, 끊임없는 터널과 연이은 환호의 행렬에 나중에는 지치지도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묘한 기분에 빠졌고, 곧 그 행렬에 스리슬쩍 동참했다.


여행객의 단순한 임무는 낮에 모두 끝이 났고, 밤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빤했다. 엘라의 작고 좁은 메인스트리트는 밤이면 그런 여행자의 무료를 채워주는 곳으로 변신했다. 불이 켜지면 작은 산골동네에서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세련되고 멋진 바와 레스토랑들이 속속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하다는 3층짜리 펍의 루프탑에서 길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음식과 칵테일로 그날의 모험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이야기에 몰입하던 어느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는 세련된 음악이 사라지고 풀소리가 들려왔다. 난데없이 찾아온 어둠. 정전이다. 사람들은 또 한번 환호했고, 잠시 멈춘 채 조용한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음미하는 듯 했다. 정전은 오래지 않아 끝났다.


오늘 밤은 트리 하우스를 예약했다. 엘라에서 정글리조트에 묵으려고 했던 계획을 상기하며 엘라에서 담불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급하게 에어비앤비 예약을 마쳤다. 호스트는 찾는 길이 어려울 거라며 직접 버스 정류장으로 나를 데리러 나왔다. 간당간당하던 휴대폰 배터리는 그에게 마지막 전화를 거는 것으로 임무를 마치고 전사했고, 호스트의 차를 타고 어둠 속을 헤치고 트리하우스에 무사히 도착했다. 가는 길에 호스트는 문제가 하나 있다고 했다. 동네가 온통 정전 중이라트리하우스 내부에는 불도 켜지지 않고 샤워를 할 수도 없다고, 깜깜한 곳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테니 전기가 다시 들어올 때까지 자기집 거실에 있어도 좋다고.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꼭 들어올 거라고.

도착. 호스트집 마당에 앉자 딸이 불밝힌 촛대 하나와 오렌지 쥬스 한잔을 가지고 나왔다. 촛불이 퍼져나가는 반경만큼 어둠이 사라졌다. 어둠에 적응하자 어슴푸레한 빛 사이로 나무 사이에 걸려있는 집이 하나 보였다. 아 저곳이 내가 오늘 잘 곳이군, 생각하며 쥬스를 홀짝홀짝 마셨다. 오늘밤 씻지 못하고 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 어둠은 끝날테니까.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하니까. 어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든 대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었고 여유가 부족했던 여행자에게 그밖의 것은 지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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