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후 결혼하는 예비신부의 글
어떤 단어에 대하여 가지는 이미지가 사람들 마다 다 다르다.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단어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어떨까? ‘나 결혼해요’라 말하면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정말 그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까?
결혼? 주변을 돌아보면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은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결혼하니 너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의심스럽다. 진심일까? 의심스럽기도 하고 그게 오래갈까? 언제까지?
대부분의 결혼 경험자들이 결혼에 대하여 안 좋게 이야기하기 때문일까. 긍정적인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강하고 센 표현을 하기 때문에 보다 더 주목되어서 일까. 사람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며 더욱 똘똘 뭉쳐지는 경향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결혼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느껴진다.
실제로 청첩장을 돌리며 한 사람이 “이제 (힘든 거) 시작이야~"하는 말을 하면 그때부터 분위기는 축하인지 아니면 너도 한번 당해봐라의 마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결혼식이, 결혼이 왜 힘든지 왜 힘든 게 당연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 년 전부터 사랑에 대하여 글을 쓰던 나는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나의 사랑 글은 언제나 희망적이었다. 나는 가끔 평소보다 유독 긍정적일 때가 있다. 그것은 진짜일 때도 있지만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것도 있으며 혹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자고 다짐하기도 한다.
결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많이 어려웠다. 마냥 긍정적인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또 스스로 내가 무엇을 감추고 있을지 내 마음을 잘 알지 못했다. 아빠의 폐암 말기 선고로 인해 결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혼이 온전히 나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녔으며, 그렇기에 더더욱 이 결정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는 깊이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15일 남긴 예비신부로써 대체 내가 왜 결혼을 하는 것인지 진지하고 솔직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이미 결정한 결혼이지만, 그래도 식을 올리기 전에 반드시 정리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누구든지 너무 심각하게 읽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깊은 이야기는 결혼 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딱히, 무를 수 없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싶어서(웃음).
아니, 당연히 결혼을 꼭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결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는 것에 선택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사랑한다.
사실, 꼭 할 필요는 없는 것은 결혼식이다. 개인적으로 결혼식은 정말 추천하지 않는다. 결혼식은 결코 신랑 신부를 위한 행사가 아니다. 주인공인 건 맞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하고 실망시키지 않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꼭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좋은 날,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등등 모두 함께 좋은 날이고 싶었다. 나에게만 좋은 날이고 모두 나를 위해 축하해줘 라고 강요해서 서운하게 하거나 기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소하게 계속해서 고민하고 결정하고 지인들이게 소식을 전하고 하는 모든 일들이 조금씩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데도 나는 아빠를 생각하며 결혼식을 준비했을 것이다.
결혼을 결정하는 이유는 다양한 것 같다. 주변의 시선과 부모님이 원하기 때문에, 혹은 결혼은 당연히 해야지 라고 생각해서 그냥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올해는 꼭 결혼을 할 거라며 올해의 목표로 정해두고 그다음 결혼할 대상을 찾는 사람도 봤다. 아이를 가져서 하게 되는 경우도 이제는 주변에서도 정말 많고 그것은 부끄러워할 이유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아이를 가져 한 결혼이 반드시 불행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확실한 것은 아이는 축복받아야 한다.
결혼을 결정할 딱히 특별한 이유가 없어서 그냥 계속 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결혼을 결정하는 일은 사실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불을 붙여줄 계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결혼을 도피처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의 외로움과 부모님의 압박 등 다양한 이유로부터의 도피이다. 현실로부터 도망쳐서 결혼을 하면 그 도피처는 과연 행복할까? 나는 결혼을 결정하는 데 외부 작용 전혀 없이 스스로 온전히 고민하고 결정했을까?
아니, 나는 결혼을 도피처로 사용했다.
나는 당시의 여러 가지 것들로부터 도망쳤다.
1. 아빠의 폐암 말기 선고로부터 도망쳤다.
온전히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몇 년 후일지 아빠가 없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너무 힘들었다. 아빠가 없는 결혼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목이 매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당장 그 슬픔을 피할 다른 주제가 필요했고 누군가에게 충분히 의지하고 싶었다. 그때 지금의 예비신랑이 내게 결혼하자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도망쳤다.
2. 천정에 물이 새는 축축하고 좁은 원룸으로부터 도망쳤다.
천정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쉬는 데 그 축축한 공기와 천정의 50%를 차지하는 곰팡이를 보며 눈물을 삼킨 날이 며칠인지. 오르막길을 올라 겨우 도착하는 좁고 축축한 원룸에서 더 이상은 살고 싶지 않았다. 누수 공사를 3개월 정도 했지만 잡히지 않아서 이사를 해야 했다. 혼자 살며 이사를 얼마나 다녔는지 그리고 이사가 얼마나 싫은지 말하면 입만 아프다.
3. 경제적으로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도망쳤다.
결혼을 결정하기 직전에는 경제적으로 혼자 벌어 혼자 먹고살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이미 돈이 부족한 내 삶에 질려버렸다. 이제는 웃으며 말하지만 나는 연봉 1600에서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취업했지만 1년 동안 약 15kg 정도가 빠지면서 때려치웠다. 그리고 다시 공부해서 지금의 분야로 이직했다. 남들보다 2년 이상 느린 시작이었고 남들보다 200만 원 이상 낮은 연봉이었다. 박봉에 적금 부으랴, 월세 내랴 지긋지긋한 삶이었다.
4. 심리적, 육체적으로 불안하고 힘든 삶으로부터 도망쳤다.
심리적으로 여자 혼자 사는 일은 쉽지가 않다. 무서운 사건이 터지면 혼자 괜찮으냐 하는 걱정 어린 질문을 받지만, 결국에 나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받은 날에는 문을 걸어 잠가도 잠을 편히 자지 못한다. 4층 집에 사는데 창문도 현관문도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관문을 단단히 걸어 잠겄는 데도 그 문이 종잇장처럼 느껴진다. 퇴근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도 그 안이 내 집 같지가 않을 때도 있다. 또 혼자 살면서 육체적으로도 여자라는 한계는 꽤나 크게 느껴졌다. 장을 보거나 가구를 옮기거나 내 힘이 부족한 일에는 해결방법이 없었다. 약한 척하는 것 같지만 가끔은 내가 닫은 물 뚜껑이 진짜로 안 열린다. 내가 닫은 게 맞는 데..!
나는 다양한 이유들로부터 도망치고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만들었다. 물론, 아빠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결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유들이야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빠의 부재는 더 가까이 오는 것이었다.
나에게 결혼이 갖는 이미지는 사실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고 우리 집을 비롯하여 가까운 곳에 화목한 가정이 거의 없었다. 결혼에 부정적이던 내가 온전히 나 스스로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외부 상황으로 인해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의 남자 친구. 예비신랑이 결혼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어 주었다.
그래, 이제까지 결혼을 도피처라 줄줄이 열거해놓고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사람이다.
이 사람과 결혼한다면 행복할 거야.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결정한다.
나이가 들어서,
친한 친구가 하니까,
부모님이 원해서,
주변의 시선 때문에,
혼자가 외로워서,
연애를 오래 해서,
애인의 요구로 인해,
평생 혼자 살 수는 없으니까,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결혼을 결정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결혼을 결정하게 된 계기, 타이밍을 만들어 주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떠한 계기로 인하여 결정하게 되었다 하여도,
이 사람이니까, 너니까.
이것이 전제해야만 가능한 결정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 나의 우선순위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혼을 준비하며 내가 가장 기록하고 싶었던 말은
결혼은 절대로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내 인생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혹시 그렇다고 해도 절대로 내 인생의 전부를 거는 일은 하지 않겠다. 결혼을 해도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스물아홉, 인생의 29%만 사용한 나머지 71%의 인생이 남아있다. 71%를 모두 결혼에 배팅한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나는 이제까지의 내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친구와 동료, 내 모든 사람들과 쌓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나의 추억들,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는 나의 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글쓰기, 스트레스를 풀며 사 모은 좋아하는 물건들이 있다. 모두 내 인생을 조금씩 나누어 사용해 모은 것들이다.
나의 지금까지의, 결혼 전까지의 인생이 소중하다면, 결코 앞으로의 인생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절대로 내 인생을 걸며 결혼하지 않는다. 다만, 내 남은 생에 너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할 것이다.
내 남은 생에 너는 이제껏 내가 모은 가장 소중한 것들 중에서도 단연코 제일 소중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나는 이렇게 곧 결혼을 한다.
-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아요를 부탁드려요.
이 글의 모든 이야기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생각일 뿐임을,
결코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꼭 이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