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 4주 5일차
올해는 아기 계획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계획한 임신 계획. 34살(만 33세)에는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야 늦지 않을 것 같아서, 두리뭉실 세웠던 계획.
코로나 덕분에 신혼여행을 못 가고 결혼한 지 5년 차에 다녀온 아프리카 여행 때부터 이제 이 여행이 끝나면, 아이를 가져도 되겠다. 즐길 만큼 즐긴 신혼이니까.
아이를 갖기 위해 잠자리를 하는 걸, 산부인과나 예비 엄마들은 '숙제'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숙제를 많이 하면 잘 생기겠지 할 정도로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여행에서 숙제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기분도 좋고 스트레스도 없으니까 아이가 잘 생기지 않을까? 그랬지만 돌아와서 생리를 했다. 그렇게 도전 첫 달은 패스.
올해 임신한 친구가 여럿이어서 물어보니, 배란일에 숙제를 해야 하고 배란일을 알려주는 배테기라는 게 있단다. 그래서 배란일을 맞춰하려고 생리가 끝나고 기다렸다. 근데 웬걸, 이미 배란일이 지나버렸다. 생리가 끝나고 며칠 안 지나 배란이 되는 걸 몰랐다. 에구, 이번 달도 날렸네.
평생을 생리 주기는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걸까 생각하며 불편하게 살았는 데, 이게 아기를 만들려니까 그 날짜가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온다. 사람 마음 참말로 간사해서 내가 필요할 때는 시간이 안 가.
배란일을 수치로 알려주는 앱에 커뮤니티가 있어서 이것저것 읽어봤다. 아이가 안 생긴다 하는 간절한 글들이 많아서 잘 안 생기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예민한 편이고 자주 골골대는 편이라, 아이가 안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아이가 안 생기면 세계 여행을 해야지 라는 계획도 세웠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실감 이상의 엄청난 행복을 가져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게 뭘까 생각했는 데 1초 만에 세계 여행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미련 많은 내가 그렇게 빨리 상실감을 떨치진 못하겠지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계획을 짜뒀다.
그렇게 이번 달, 생리가 지나면 하루 이틀 뒤부터 배란일 테스트를 해서 이번에는 꼭 배란일 맞춰 숙제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 데. 이번 생리는 왠지 가슴이 뭉실뭉실 뭉치고 아프기도 하고. 아랫배도 묵직하고. 근데 뭐 생리하는 날이랑 크게 다른 것은 아닌데, 나는 워낙 내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채는 편이라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걱정하기도 하니까.
보통의 일요일 아침. 볼일 보러 화장실을 갔는 데, 흠.. 궁금하네.. 아니겠지만? 궁금하네. 아님 말고? 하는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기 검사를 했다. 그런 데...
정말 진한 빨간 두줄이 딱..!!
순간 머릿속에 정말 많은 생각과 기쁨이 동시에 펼쳐지며, 밖에서 자고 있는 팡민(남편)이에게 뭐라고 말할까! 영상을 켤까! 아니, 다 집어 치고 일단 알려야 해!!!
"여보!!!! 여보! 여보여보, 여보!!!!!!!
우리 성공했어! 유민이가 생겼다!!!!!"
한 시간 이상, 꼭 껴안고 뽀뽀하고 함께 행복을 느꼈다. 이렇게 기쁜 일이...!
여기저기 알리고 싶어서 정말 입이 근질근질! 근데 초기에는 슬픈 일도 많다고 하니 12주 이후 안정기에 들어서면 알리는 게 좋다는 걸 어디서 들었을 까. 아무래도 아이를 좋아해서 SNS 보며 주섬주섬 주서 들은 정보들. 그리고 유튜브랑 챗GPT 통해서 임신 정보들을 계속 물어보고 적어놓고 노션에 할 일 리스트업 하고... 이 방을 아가방으로 바꾸녜, 뭐를 사야하녜, 병원은 어디를 가야 하냐.. 등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뭔가 싱숭생숭. 뭘까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까. 팡민이에게 물어보았다.
"여보, 너 지금 기분이 어때?"
"나..? 내가... 아빠라고....?"
그래, 딱 그 마음일까?
내가 엄마라고..? 아니 내 배에 엄청 조그만 뭔가 자란다고?
뭔가 엄청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과 불안, 그리고 설렘을 넘어 두려움일까? 심장이 콩캉콩캉.
나도 아직 너무 앤 데.. 나 아직 철딱서니 없는 앤 데 엄마가 돼버렸네.. 잘할 수 있겠지?
다음 주 주말에는 산부인과 가고 회사에는 뭐라고 말해서 조기 퇴근과 육아휴직까지 별 일 없이 잘 받을 수 있겠지..?
이 마음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마음은 들뜨고 걱정되고 뭔가 정리가 안 되는 데, 하루종일 평소보다 심장이 콩콩콩캉 더 잘 느껴지고, 배는 조금 싸아-하고 살짝 묵직한 정도. 그래도 내 몸은 아직 완전 내 몸이다. 아직 아무 일이 없이 밥 잘 먹고 끙 잘하고 너무 별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배란일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아무 날에나 그냥 숙제하다 바로 생긴 아기.
정말 감사한 일이다. 별일 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임산부로 10개월 함께 잘 지내보자.
아가 유민아!! 고마워 너무 환영해!...
맞겠지? 이게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