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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May 20. 2016

현장 역학조사를 가다

캄보디아 WHO 인턴 2주차

현장 역학조사(Field Outbreak Investigation)이라함은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그 경로 및 원인을 찾기 위하여 발생 예상 지점으로 직접 나가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이야기한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발생 조사"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질병역학(Epidemiology)에 근거한 현장 조사이기 때문에 임의로 적합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번역했다. 현장 역학조사는 공중보건학(Public Health)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꽃이란 "대학생활의 꽃은 연애"같은 맥락이 아니라 "군생활의 꽃은 유격" 정도의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다. 현장에서의 조사 를 통한 감염 의심자들의 증상 이해와 이들과의 대화, 샘플 채취 등은 공중보건 혹은 국제보건의 필요성이 근본적으로 제기된 원인이기도 한 전염 가능한 질병(Infectious Disease)의 이해 및 퇴치를 위해서는 빠질 수 없는 가장 첫 단계이기 때문이고, 또 짧은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와 인력이 소모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 중 헤드쿼터의 섹시한 오피스 업무를 동경하여 이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 중에서는 이런 현장 경험이 동반되는 일은 적극적으로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는 전염병과 백신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탐험가처럼 개발 도상국의 오지로 나가 하는 일에 대한 동경도 가지고 있었다. 캄보디아로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국가사무소장님이 "필드 경험을 많이 시켜주겠다."라고 꼬신 말 때문이었다. 첫 주는 관련 자료들을 읽고, 정부부처와의 미팅에 참석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드디어 두번 째 주에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조사의 목적은 어제 프놈펜에서 발생한 여아 홍역 환자의 감염 경로 파악이었다. 프놈펜에 살고 있는 아이지만 지난 달 캄보디아 새해 (Khmer New Year)에 따까오(Takeo) 지방의 할머니 집에 다녀 온 것이 의심 경로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같은 지방 내에서 아이의 할머니가 사는 옆 마을에서도 올해 1월에 홍역 확진 케이스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하니 더더욱 직접 찾아가 그 동네의 아이들 중 전파자가 있는지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었다. 홍역은 환자와 접촉 시 10명 중 9명이 감염될 정도로 전염율이 높은 질병이지만 예방접종 백신이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예방 또한 비교적 쉽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홍역 백신 접종율은 80% 정도밖에 되지 않고, 백신의 예방 성공율(Efficacy) 역시 85%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100명 중 33명 정도는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역학 조사를 갈 경우 감염 의심 증상 조사와 함께 꼭 병행하는 것이 대상 동네의 예방접종율이다. 


조사 방식은 생각보다 무식하고 간단하다. 마을이 속해있는 지방(Operational District)의 보건 총괄 사무소로 가 그 지방 높으신 분들과 미팅을 한다.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WHO가 얼마나 홍역 퇴치에 힘쓰고 있으며, 한명이라도 감염되면 얼마나 큰 위험을 내포하는지에 대해 으름장을 놓은 후 마을의 보건소(Health center) 직원들과 동행하여 마을로 간다. 보건소에 등록 된 현황에 의하면 이 마을에 사는 총 15세 이하 어린이의 수는 100명에 조금 못 미친다고 했다. 감염자가 방문했던 할머니의 집을 중심으로 출동한 사람들이 3팀으로 나뉘어 대충 세 방향을 찍은 후 각자 정한 방향으로 조사를 나간다. 현지 언어 사용이 필수기 때문에 팀은 외국인 1명과 현지인 1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나는 캄보디아 백신 프로그램의 전문가인 WHO의 현지 직원을 동행하였다. 조사 대상 아동의 이름, 나이 등의 기본 정보와 감염 증상 및 백신 접종 정보 등을 간단하게 기록할 수 있는 표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면 으레 가장 먼저 우리를 발견주는 건 아이들과 개들이다. 집 마다 평균적으로 세네명의 아이들이 있고, 일곱에서 열마리 정도의 개들이 있다. 조사는 아동의 보호자를 통하여 하여야 하기 때문에 어른이 없는 집이나 할머니나 할아버지밖에 없는 집을 갈 경우 조사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보건소에서 나누어 주는 의료기록카드(Yellow card)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른이 없더라도 간단한 정보까지는 기록을 할 수 있었다. 


39도의 땡볕 아래에서 4시간 정도를 발품을 판 결과 우리의 조사표에는 40명 정도의 아이들의 정보가 기록되었다. 방문하는 집 마다 좀처럼 꺼내지 않은 의료카드를 찾으러 들어간 어른들을 기다리고, 아이들에게 증상을 물어보고 림프절 등을 만져 확인해보고,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하다 보니 한 집당 짧게는 10분에서 많게는 20분까지의 시간이 소요 되었고, 집과 집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논밭사이의 좁은 길에 차가 다닐 수 없었던 관계로 모든 조사를 걸어서 하다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조사가 끝났다. 다행히 우리가 만난 모든 아이들이 홍역 필수 예방접종 2회를 모두 맞은 아이들이었고, 의심 증상의 핵심인 고열과 피부발진을 최근 한달 이내에 겪은 아이도 아무도 없었다. 가정 방문이 끝난 이후에도 다시 동네 보건소 및 지방 보건센터에 찾아가 퇴근 2개월 간의 고열 환자 방문 기록을 모두 다 뒤진 후에야 조사 일정이 모두 끝났다. 


새벽 여섯시에 집에서 나와 하루종일 일정을 소화하고 났더니 온 몸이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개발도상국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중앙 관리하는 보건 시스템이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까지 비교적 잘 기능하고 있는 것에 놀랐고, 같이 몇 시간씩 차를 타고가며 그 동안의 무용담과 커리어에 관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준 전문가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다리는 무거웠으나 기분은 좋았다. 다른 동남아  WHO 국가 사무소들은 백신과 면역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팀에 보통 50명 이상의 직원들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직원들은 전염병 발생 시 신속한 조사 및 평상시의 모니터링(Surveillance)을 위하여 각각의 지방에서 상주하며 근무한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경우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백신 및 면역 팀에는 외국인 스탭 1명과 캄보디아인 스탭 1명이 전부다. 국토의 면적이 그리 크지 않은 탓에 전염병 의심 케이스가 보고될 경우 어디든 이 두 스텝들이 출동하여 공무원들과 함께 조사를 진행한다지만, 상주 직원이 없기 때문에 조사하지 못하고 놓치는 케이스들도 모르지만 많을 것이라며 아쉬워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생각했던 것 보다 직원의 채용이나 조직원의 수나 구성 등이 예전 다니던 회사만큼 체계적으로 디자인되고 관리되지 못하는 것도 전직 HR 매니저라 그런지 유독 안타까웠다. 


다음 달에는 백신 접종 프로그램을 위하여 일주일 정도 깡촌으로 출장을 갈텐데 나를 꼭 데려가 주기로 약속하였다. 에어콘은 커녕 깨끗한 화장실도 기대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고된 필드경험만큼 인턴 기간동안 할 수 있는 값진 경험도 없는 것 같다. 내가 과연 필드체질인지 아닌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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