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기억합니다"
서울 속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 최신 트렌드가 밀집한 곳, 주말 아침까지 신나는 음악이 끊이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는 곳. 혹은 다양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유흥가 등,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이태원에 대한 감상은 각자 다를 것입니다.
저에게 이태원이라는 곳은 단순히 주말마다 놀러 가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처음 이태원을 간 날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2002년, 고등학교 1학년, 월드컵이 얼마 남은 어느 날 온라인 게이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처음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갈 곳은 게이클럽, 게이바 등 성인들만 갈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성인같이 보여야 했습니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마냥 어른처럼 보이는 나이여서 그랬을까요. 저는 결혼식을 위해 큰누나가 사준 정장과 구두를 신고, 나름 더 어른스럽게 보이고자 베레모까지 쓰며 한껏 멋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친한 형이 빌려준 신분증을 사용해 이태원 클럽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오고 가는 곳이기에 아무리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어도 그곳을 지키는 분들 눈에는 마냥 어린 고등학생으로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곳 하나 저를 제한하지 않고, 받아 주셨습니다.
군 관련 사건·사고, 폭력 사건 등으로 인해 우범지역으로 인식되고, 낯선 문화가 주는 거리감으로 인해 대중들은 찾지 않고, 미군과 외국인들 그리고 트렌스젠더와 성소수자들만 찾던 외진 곳이었지만, 저에겐 그곳만큼 편했던 곳은 없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 이태원에서만큼은 가지고 있던 마음의 벽을 넘어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고,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2년이 지났습니다. 예전보다 더 분주해진 거리, 화려해진 네온사인, 새로운 건물들 제가 기억하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태원에 대해 제가 가진 감정과 경험들은 하나씩 쌓여 내 안에 담겼기에 이곳은 여전히 즐겁고, 행복한 나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날 저 역시 이태원에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거리는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으면 찾지 않는 곳이기에 사고 현장 건너편에서 그곳을 바라보며 지나쳤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처음 맞는 할로윈이어서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 예상했고, 예상대로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매년 있는 일이기에 큰 생각 없이 그곳을 지나 게이클럽과 바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평소 자주 가던 바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바에 도착한 친구가 그 소식을 전해준 시점은 대략 11시쯤,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을 보여주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159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1-2명이 다치거나 죽었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정신없이 춤추며 놀았습니다.
새벽 4시쯤 되었을까요. 신나게 놀고 있던 클럽에 일제히 환한 불이 켜지며, 밖에 사고가 났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통제된 이태원 중심 거리를 보광동 쪽으로 크게 돌아 녹사평까지 걸어갔고, 그곳에서 비상 편성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자로 집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전혀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일요일 아침이 되어 취기와 흥이 가라앉은 후, 가족과 지인들의 안부 연락을 받으니 그제야 나는 무사하구나, 운이 좋았다는 안도감과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현실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남동생의 죽음이었습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첫 직장 출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여자 친구와 할로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를 나갔던 그와 그녀는 모두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졌던 것은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이 다시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와 동생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정도였던 거 같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바다 위라는 특수한 환경과, 그 사건이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저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사고로 인해 참사와 사고,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가까운 일임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일상적인 장소였고, 소중한 지인의 동생이었기에 그 참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 사고 장소를 지날 때마다 잠시 멈추어 기도 합니다.
그곳에선 고통에서 벗어나 잘 지내기를, 행복하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으로 이태원을 찾지 못하는 제 지인을 위해, 2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행복한 기억만 가득했던 이태원을 위해, 마지막으로 그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나와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현재 2년이란 시간이 지나며 그 길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 골목길에 사람들이 남긴 추모의 흔적은 흩어지고,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벽면의 글귀들이 무심하게 자리를 지킵니다.
얼마 전 할로윈, 거리를 즐기러 나온 시민들보다 더 많은 경찰과 구청 직원들을 보며, 활기가 가득했던 옛날의 이태원이 그리워졌습니다.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죽은 자들을 위해 다양한 축제와 퍼레이드를 하는 멕시코 ‘죽은 자의 날’처럼 다양한 예술 전시와 공연으로 테러의 비극을 잊지 않되,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 도시 회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9/11 국가 봉사와 추모의 날’처럼.
다양성, 자유, 역동성, 포용, 개성 등으로 대표되는 이태원의 지역적 특색이 불안과 분노, 슬픔으로 점점 삭막해져만 가는 서울 안에서 그 지역이 가진 고유의 역할과 개성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 젊은 우리에게 즐거움으로 남길 바랍니다.
이태원은 여전히 저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창이며, 누구나 자유롭고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그 자리에 담긴 희생과 아픔을 잊지 않으면서도, 이곳이 다시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곳으로 되살아나길 소망합니다.
Editor 천성민 /@billycheonkr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기록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잊었던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반추의 시간입니다. 또한 현재를 직시하고 기억하며, 감정을 해소하는 동시에, 미래를 위한 지혜와 교훈을 남겨주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어줍니다.
기록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정 사건이나 경험을 한 개인만의 일에 머물지 않고, 이를 겪은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배우도록 돕도록 하며, 때로 주류 사회에서 잊히기 쉬운 개인이나 소외된 집단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공정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나아가, 기록은 사건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이끌기도 하죠.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과 생존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와 ‘참사는 골목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두 권의 책은 해당 사건과 연관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문자로 전하면서, ‘기록’이라는 행위가 가진 의미를 보여줍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 대해 미디어를 통해 일반 시민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슬픔과 고통에 초점을 맞춘 보도, 정부와의 갈등에서 목소리를 내는 모습, 그리고 추모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부 유가족의 개인적 사연이 강조되거나, 공동체적 연대와 분열의 모습이 조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 보도는 종종 감정적이고 단편적인 접근에 그치거나, 사건의 구조적 문제보다 개인적 비극을 부각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보도는 유가족의 입체적인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이 줄어드는 문제를 낳았습니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는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 생존자,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으로, 각각 참사의 상처와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며 사회적 성찰과 변화를 제안합니다. 두 책은 참사를 개인의 비극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공동체적 기억을 확장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교훈을 전달하는 중요한 기록물입니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유가족과 생존자, 그리고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닿을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사건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공감과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아팠던 참사의 기억을 써내려 가는 과정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이태원 참사 작가 기록단으로 활동하고 계신 박희정, 유해정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Q1. 자기소개와 이태원 참사 기록단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태원 참사 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희정, 유해정입니다. 재난과 관련된 기록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처음 재난 기록에 참여한 건 세월호 참사였어요. 그때 기록을 통해 알게 된 건, 재난은 단순히 한순간의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깊고 오래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었어요.
이태원 참사는 제게 더 개인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자주 다녔던 공간, 저의 일상에서 익숙했던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 컸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이 사건이 단순히 추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기록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작은 역할을 싶었어요.”
Q2. 이태원 참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이란 국적 희생자의 가족을 인터뷰했던 순간입니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유가족에게 시신 인도 외에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인 유가족들은 한국 사회와 단절된 채였고, 사건의 특성상 자국 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오롯이 가족끼리만 그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유일하게 지원한 장례 절차에서도 문화적 차이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외국인 희생자들을 숫자로만 추상화해 생각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란 국적 희생자’라는 단어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소중한 삶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이 인터뷰는 참사의 기록이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공감과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줬습니다.”
Q3. 이태원을 기록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나 원칙은 무엇인가요?
“재난은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는 일입니다. 피해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감당해서도 안되는 커다란 상처입니다. 그러므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사회가 제대로 귀 기울이는 데에서 재난 대응과 재난 이후의 사회를 재구성하는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차별적 인식을 벗어나려는 노력과 피해자를 권리의 주체로 존중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숫자나 단순한 데이터로 축소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이야기로 기록하는 것이 참사 기록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사 기록물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기록물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건 두 가지 메시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태원 참사는 단순한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안전 관리 시스템의 부재, 불충분한 행정적 대응, 그리고 참사 이후에도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점 등은 이 사건이 왜 반복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경고를 던집니다.
두 번째는, 희생자들이 단순히 숫자가 아닌 이름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록을 통해 그들의 삶과 그들을 잃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참사가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기록물이 독자들에게 공감과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Q4. 이태원 참사 기록집을 기획하시게 된 의도는 무엇인가요?
“기록집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참사를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남기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세월호 참사 기록에 참여했을 때 느낀 점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사건이 희미해지고, 심지어 잘못된 정보가 사건의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는 거였어요. 이태원 참사 역시 단순히 애도와 추모로 끝날 일이 아니라, 왜 이런 비극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록집에서는 특히 참사로 인해 희생된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159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건의 무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록집이 사회적 성찰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은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Q5. 기록물을 남긴다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기록은 개인에게는 고통을 정리하고 치유하는 시간이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반성과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작업에서는 유가족들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치유의 단계를 밟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처음엔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셨지만, 자신의 경험이 기록되고 누군가에게 전달된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사회적으로는, 기록물이 참사의 본질과 사회적 책임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고 믿습니다. 기록이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변화시키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쓰이길 바랍니다.”
Q6. 이태원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태원은 단순히 하나의 지역이 아니라,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참사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이곳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고 더 안전하고 포용적인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경찰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시민 동선 관리, 공간 설계, 그리고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특히, 할로윈 축제와 같은 대규모 행사가 다시 열린다면, 단기적인 준비가 아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태원이 참사를 넘어, 슬픔과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다시금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되살아나길 희망합니다.”
Editor 천성민 /@billycheo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