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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Oct 22. 2019

적성과 진로 2. -  감 떨어지는 소리:반전  

“적성 같은 소리 하네.”


“아니, 그래도 적성이 우선이지.”


“요즘 누가 적성 따져서 전공을 정하니? 감 떨어지는 소리 그만하시고! “


대학 입학을 위한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 태풍처럼 지나갔다.

둘째를 대학에 보내느라 수시 원서 접수를 해야 했던 친구는 비관적인 교육 현실과 그럼에도 철저하게 현실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입장을 뒤섞어 한참을 탄식했다.

듣다가 듣다가 가장 기막혔던 부분은 바로 친구의 아들과 그의 친구 5명의 원서 내역.

다섯 명 모두 나름 공부라면 한 자신 있어하는 녀석들인데 전공이 싹 다 겹치더란다. 모두 이과인 아들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원한 전공은 바로 의예과. 치의예과. 한의예과.

어느 한 명 빠지지 않고 의대가 1순위인데 서울이고 지방이고 가리지 않고 일단 쭈욱 깔았는데 학교가 겹치지 않아 다행이란다. 그리고 다음은 컴퓨터 공학. 혹은 비슷한 부류의 전공.


별 생각 없이 ‘어떻게 다섯 명이 모두 같은 전공을 선택했을까, 적성도 비슷한 거야?’ 말을 흘렸다가 동네 감 다 따겠다는 핀잔만 받은 거다. 이미 공부 좀 한다는 이과 생들은 의예과를 지원하고 문과 생들은 경영학과를 지원한다는 건 공공연한 법칙.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에서 목격했을 때의 씁쓸함이란..

요즘같이 살기 어려운 시절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지난여름, 아침나절 들은 뉴스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울적했었다.


<평생 버는 소득의 차이를 구조적인 원인에서 접근한 연구>에서 부자가 되려면 일단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냈단다. 그런데 더해서 개인의 소득 차에 무엇이 가장 큰 요인인지 KDI에서 조사를 했는데 결과가 가관이다. 언뜻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잘 벌고 못 벌고는 ‘개인의 노력’이 가장 큰 요인 이어야 한다. (요즘엔 ‘상식’이 아니라 ‘이상’이 됐지만) 그런데 결과는 절망적일 정도로 구체적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올 때 어떤 조건에서 출발하는 가’가 개인의 소득 차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단다. 즉, 평생 일하면서 여러 가지 변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조건보다도 첫출발, 어떤 조건에서 출발을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놈의 <첫 단추론>!


기자는 <사회에 진입할 때 조건>이 평생 소득을 결정짓는 데서 차지하는 비중이 66.9%, 그러니까 30세부터 30년간 내가 일을 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들로 만들 수 있는 차이는 겨우 33.1%에 불과하며 사회초년생이 가진 조건 중 가장 큰 결정 요인이 교육임을 감안할 때, 결국, 어린 시절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로 결정이 된다고 조사 결과를 전했다.


이런 뉴스를 듣고 내 자식을 떠올리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쓸데없이 생각 많은 나 같은 사람은 즉각적으로 스스로를 대입해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삶인가? 앞으로도 그럴 거란 말인가? ’.. 그렇게 기운이 빠지려다 갑자기 약이 오르면서 울컥.

이러니 동네방네 온 집안 애들이 죄다 의사가 장래희망이고, 컴퓨터 공학만 전공인 줄 알지.

(하기야 유명한 집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두 군데 원서를 넣더라.

색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전공, 진로. 어디든 붙으면 간다는 건 대학 입학만의 문제가 이미 아니다)


친구는 입시가 끝나고 내년 3월 정도 돼야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소식이 없어도 그러려니 하란다.

전략대로 붙어주면 천운이지만 ‘재수’ 카드는 유효하므로 자긴 이제 의대 보내기로 유명한 재수 학원을 알아보고 다녀야 하니 바쁠 예정이란다.

목구멍까지 올라와 벌컥 쏟아 낼 것 같았다.

‘우리 미쳐도 곱게 미치자. 애들 그만 잡고..’

꾹 눌렀다. 겨우 참았다.

이미 건널 강은 다 건넌 사람한테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서.


전화를 끊기 전, 이게 다 자식을 둔 죄라며 자신의 노고를 위로하는 건지, 한탄하는 건지 한숨 범벅인 친구. 나는 딱 한 수만 더 뜨고 전화를 끊었다.

“네가 자식을 둔 죄가 아니라 이 놈의 나라, 이 놈의 교육이 문제다. 니 들이 고생이 많다. 아니, 그 준수하고도 준수한 니 아들이 제일 고생이다! ”


반전 없는 영화나 소설은 심심하다.

그러나 인생에서 반전은 심심을 논하기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 일대의 사건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저 재미는 없더라도 무난하고 평탄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반전은 재미 정도가 문제가 아니다.

반전을 위해 쏟아부은 그동안의 노고, 모험, 인내를 넘치게 보상해 주고 이겨낸 사람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게 해 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반전을 선택할 수 있는 인생!

나쁘지 않다! 주름은 좀 생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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