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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Nov 01. 2019

하고 싶은 일 다하세요.  엄마 인생이에요.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까..’

이제부터 최소 1시간이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친정 엄마의 <옛날엔 말이다 시리즈>.

오늘 스토리는 ‘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너희 오빠를 키우는 내내…’

이렇게 시작되는 스토리 들과 주제가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시리즈의 초반엔 청자인 나의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연대기적 구술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 전개, 그러니까 당일 당신이 작정하고 꽂힌

사건 중심으로 전달을 하시니 제대로 이해하려면 추가 질문을 계속할 수밖에.

어쨌든 그렇게 어르신 이야기를 어디 한 번 들어보자 맘 비우고 듣다 보면 지나간 세월도 집히는 것이

아주 지루한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최소 1시간짜리군.’ 이런 가늠이 될 정도면 이미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아차렸다는 거다. 인내심 없는 나는 반복 재생이 반갑지 않다.


그런데 오늘, 최소 한 시간이 되기 전에 신상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런저런 끝에 그래서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뭘 해보고 싶으시냐 물으니 생각지도 못한 답이 등장한 거다.

 

“뭘 팔든, 만들든, 작은 가게를 하나 하고 싶지.”


예상 밖이어도 한참 밖이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오직 전업 주부이셨던 분이 가게를 해보고 싶으셨다고!

그래 어째 그러실까? 되물으니 그 답이 이해가 가도 아주 많이 이해가 가는 답이다.


“내 가게를 하나 하면 내 맘대로 뭐든 할 수 있고.. 눈치도 안 보고, 답답하게 집에만 있지 않아도 되고. 내 일이 있는 거니까”


아! 오십 년 동안 엄마를 보고 겪었는데도 이걸 몰랐다니...

안 그런 척하셨어도 엄마는 외 벌이 아빠 눈치를 좀 보셨던 모양이다.


“누구 눈치를 봐요? 아버지?”

“그럼 돈 벌어오는 놈이 최곤데 어떻게 눈치를 안 보고 사나?

“그러신 줄 몰랐네.. 아버지가 대놓고 눈치를 줬어요? 치사하게?”

“그게 말로 하는 거가? 한창 먹는 아는 셋 이제. 주는 돈으로 먹여야지, 공부시켜야지. 아이고. 말도 마라. 살림이 쪼달리도 티를 낼 수가 있나. 티 낸다고 없는 돈이 나오나!”

“그럼 나가서 뭐라도 해 보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안 한 줄 아나? 시간 날 때 친구 가게도 봐주고, 손 없으면 나가고.”

“그건 몰랐네..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뭐 잘난 거라고 너희한테 다 보고하고 사나?”


엄마는 제대로 뭘 해보고 싶었어도 총총히 어린애 셋을 두고 나갈 수 없었고, 육아 걱정을 거둘 즈음엔 다시 뭔가 새로 시작할 엄두가 안 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었다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었겠다 싶다.


그렇게 살고 보니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 간간히 그런 생각이 드신단다.

자식들은 모두 제 갈 길을 아는 것 같고, 영감은 평생 일 한 스스로를 저렇게 자랑하며 뿌듯해하는데 나도 일을 했었어야 했다.. 고.

오늘은 이야기의 기승전결 질문이 문제가 아니었다. 할머니 위로가 먼저다.

애 셋은 아무나 키우는 거냐, 지금처럼 살기 좋은 세상도 아니고 그 공을 어떻게 다하겠냐,

엄마 덕분에 다들 공부하고 일한 거다..

그러나 엄마 표정은 딱 ‘더 말해 뭣하냐.. 여기서 말지..’


많은 어르신들이 ‘자식의 성공이 곧 부모의 성공’이라 생각한다는데 우리 엄마도 역시 그런 생각이 있으신 거다. 아직까지(앞으로도 그닥) 주변에 내로라할 만큼 기 막히게 잘 된 자식도 없고, 그렇다고 영감님이 자상해서

황혼을 로맨틱하게 보내고 계신 것도 아니고. 돈이라도 많아 모자란 걸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결국 남편도, 자식도 이도 저도 아닌 인생. 내 일이나 열심히 해서 성취감도 느끼고 다르게 살아봤으면 어땠을까… 그런 것 같다.

감히 이걸로 위로 삼으세요, 저걸로 만족하세요. 갖다 붙이려니 내가 할 소리가 아닌 듯하다.

비교가 줄 수 있는 답이 아니다.


나이 오십이면 별 산란함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직이네.. 한탄을 했더니,

나이 팔십을 바라보는 엄마도 아직 저런 생각이 남아 입 밖으로 미련을 보이신다.

그래서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 건가…


이러고 있자니, 독립적이고 자아가 매우 강한 우리 딸이 나를 채찍질하던 소리가 필연적으로 떠오른다.

“엄마, 절대 나 때문에 일을 못했다, 안 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냥 엄마가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하세요. 엄마 인생이에요.”


아…. 우리 딸은 나를 이렇게 밀어주는데, 왜 나는 당최 이러고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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