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텔담, 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라

암스텔담의 일상여행자 1화. (2018.1.20.)

by 김은형

여행을 선물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주연샘이 벨기에까지 자신을 만나러 온 나를 위해 2박3일의 네덜란드 여행을 선물했다.

삶은 참 찬란하고 기똥차다!

브뤼셀에서 기차를 타고 고흐와 베르메르와 램브란트와 에라스무스의 나라!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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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건너편이 그 유명한 네덜란드의 홍등가 amsterdam Red Light District! 흥미진진해진다. 네덜란드에서 문화산업을 전공하던 친구 덕분에 지겹도록 들었던 낯선 풍경들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호기심이 폭발한다. 암스텔담에 도착하자마자 튜울립 수출회사를 다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암스텔담의 심장으로 달려 나간다.


한국에서는 여성 금기 구역인 홍등가로 갔다. 암스텔담 중앙역 맞은편의 홍등가 (Red Light District)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어있다. 섹스와 마약은 대체로 세상의 금기어에 가까운데 네덜란드 사람들에겐 더욱 현세적인 종교와 같다고 해야할까? 종교에 좀 모욕적인가? 아니면 어쩌면 네덜란드인들이야말로 가장 르네상스적인 인간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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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홍등가의 기원은 13세기부터라고 하는데(세계 모든 나라의 홍등가는 사실 인류의 발생과 그 기원이 같지 않을까? 어쩌면? ) 사실 국제적인 해상무역 중심지에서 홍등가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은 아닐까? 네덜란드에서 홍등가를 관광 상품화하고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들의 생활방식을 현실 그대로 존중하는 것, 성에 관한 자기 결정권 (sex self determination)을 존중해 달라”


단순 명쾌한 주장의 화두에 담긴 의미는 모든 것에 대한 열림이요 개방(openness)이라고 한다. 오랜된 항구도시 다운 철학이다.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네덜란드 홍등가 종사자들만의 특별한 주장이 아니라, 사실은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 기본 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매춘업에 종사했던 Maiska Majoor는 홍등가에 ‘Belle’이라는 브론즈 동상을 세우며 이 세상 모든 성 노동자를 존중하라는 글귀를 써 넣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존중받아야할 사람들이 단순히 매춘부들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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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선생이다. 대한민국에서 선생은, 교사는 얼마나 존중받고 존경받는 존재들인가? 나는 거기에 엄마이고 아내이기도 했고, 딸이고 누나이며 동생이고 고모나 이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나는 또 어떤 존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우린 얼마나 깊이 서로를 존중하며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소통하고 통한다고 말하는 것의 범주와 깊이는 어느 정도 인 것일까? 우리가 존중하는 것은 고작 어쩌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알량한 것들의 조합이거나 세속적인 욕망을 목표로 한 천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이 맹종하는 돈이나 명품이 모두 천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한 맹신은 우리를 모두 천박한 어떤 존재로 만들고 심지어는 자신이 자신 자신도 존중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상대에 대한 무시와 경계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까지도 굳게 닫아 스스로와의 소통과 대화도 불가능하며 자기학대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 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들의 생활방식을 현실 그대로 존중하는 것, 모든 삶에 관한 자기 결정권(lifestyle self determination- 이 표현이 맞을까?)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본질적인 바탕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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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타자에 대한 이해란, 단지 암스텔담 홍등가 매춘업 종사자들에게만 필요한 이슈는 아니다.

우린 자기 스스로의 틀 안에서 너무 많이 옳다.


내가 옳다는 자기 결정은 상대의 경험이나 지식을 그렇지 않은 경우로 단정 짓는 우를 범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고정된 자기 세계( 환경, 공간, 지식, 인식, 종교 교육 등등)에 갇힌 사람들일수록 더욱 안정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욕망하면서 더 굳게 자신의 고정된 세계를 요새화한다. 난공불락의 그곳을 우리는 파괴하기는 커녕 문을 열수도 없다. 심지어 그 문 앞에 도달할 수도 없다. 열리지 않은 세계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고,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린 신이 아니다. 열리지 않고 보지 않은 세계에 대해 우린 그 어떤 단정도 내려서는 않된다. 통했다고, 소통했다고 말하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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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텔담 홍등가의 홍등 아래 앉아있는 육감적인 직업여성들을 보며 나는 나를 본다.

누군가를 유혹하고 내 삶에 도움을 주는 무엇으로 대상화하기 위해 나 또한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한 많은 노력을 경주하지 않았나?


대중 강의를 나갈 때도 나는 그들에게 전문적인 여성으로 보이기 위한 전략적 패션코드를 이용하기도 하고, 학부모가 오는 공개 수업 일에는 바람직하고 전형적인 선생처럼 보이기 위한 패션전략을 쓰기도 한다.


나의 전략적 패션은 더욱 겹쳐 입는 것이고, 네덜란드 홍등가 그녀들의 전략적인 패션은 더 많이 벗거나 레이스나 가죽으로 아찔함을 연출하는 차이일 뿐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을 더하기 위한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러한 보편성은 지구위에 사는 인간들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가져야한다는 인권적 보편성과도 일맥상통한다.


“ 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라 ”


암스텔담 홍등가를 관광하며 내가 얻은 중요한 삶의 진실이자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