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텔담의 일상여행자 11화. (2018.1.21.)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에서의 감동을 어떻게 기록해야할지 모르겠다.
감동이라고 해야 할까? 아픔이라고 해야 할까? 공감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고흐는 결국 320번 작품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 그림을 마지막으로 나를 울렸다.
도대체 얼마나 그림 앞에서 서서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고흐를 만난 것은 19세 때였다. 정시 대학에 낙방하고 후기 대학인 전주대학에 입학 한 후 학교와 친구, 주변 환경 모든 것에 부적응 상태였는데, 오로지 나를 안정시키고 적응시키는 곳이 있었다. 바로 커피숍 ‘반 고흐’였다.
대전에서도 ‘반 고흐’ 커피숍이 단골이었지만, 갤러리를 겸한 전주의 ‘반 고흐’ 커피숍은 항상 나에게 위안을 주는 핑크빛 장미가 그려진 정물화가 붙박이로 걸려있었다. 물론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도 인쇄본으로 걸려있었다.당시 나는 왠지 그 정물화만 보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며 위안을 받곤 했다.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던 나는 서점에서 반 고흐 관련 책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고 바로 그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난 참 쉬운 여자다. 항상 아름다움 앞에선 여지없이 단 번에 무너져버린다. 특히 그 시기에 내가 사랑에 빠졌던 고흐 그림은 ‘씨 뿌리는 사람’ 과 ‘까마귀 떼가 나는 보리밭’ 이었다. 얼마나 간절히 원화를 보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무려 32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까마귀 떼 나는 보리밭(Wheat Field with Crows), 해바라기(Sunflowers), 구두(Pair of Shoes) ’ 등의 그림을 직접 보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고흐의 그림이 내게 주는 힘은 좀 남다른 것이었다. 내 책상 앞 벽에 붙여 놓은 ‘씨 뿌리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끊임없이 나의 미래를 다짐하고 설계하고 꿈에 부풀었었고, 힘든 일이 생기면 ‘ 까마귀 떼 나는 보리밭’을 보며 절망 끝의 또 다른 비상을 꿈꾸기도 했었다.
특히 87년 가을, 영화 <1987>에서 그 시대 젊은이들의 치열한 시대정신과 젊음의 방황이 그려지는 것처럼 나 또한 전주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까마귀 떼 나는 보리밭’의 처절한 절망과 체념의 오솔길에 갇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 받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텔레비전 아침 뉴스에 대서특필된 나의 체포 기사를 보면서 부모님이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교육공무원이셨고, 충격에 빠진 스물 두살 어린 딸의 아픔에 공감하기 보다는, 다른 가족들의 생계와 교육비 걱정에 자식과 부모의 인연을 끊자고, 학교 그만두라고 하셨다.
파리 오르쉐에 전시되어있는 고흐의 오베르교회그림. 유럽의 하늘은 정말 저렇듯 북청색이다.
이제야 비로소 부모님의 아픈 마음이 이해된다. 유치장에 갇힌 딸자식을 차마 대면할 수 없어 오빠를 보내셨고, 5일째인가? 석방되어 나오던 날 오빠의 트럭에 올라타고 깊은 잠에 빠져 대전에 순간 이동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 엊그제 같다. 날 위로하던 오빠의 모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오빠가 그립다.
그 시절 나는 눈물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상실하고 해맑게 바보천치처럼 웃기만 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다시 찾아 쓰는 지금 나는 비로소 울게 된다. 도대체 그 시절 젊은이들이 시대와 역사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 도대체 시대의 절망을 온 몸으로 막아내고 견디며 위험을 무릅쓰고 함성을 지른 그 젊은 패기와 순수함은 왜 피 흘리는 고문과 죽음을 감수해야만 했는가? 32년 만에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 시절의 슬픔과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도 유럽이라는 먼 곳에 와서야 비로소 .... 저절로 통곡이 나온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고흐 그림의 빛나는 노랑 빛과 짙푸른 하늘의 남청색과 적토마 같은 붉은 땅 빛으로 삶을 견뎠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드디어 32년 만에 진짜 그림을 대면하게 되니 그냥 눈물이 줄줄 흐를 수밖에....
나는 고흐의 그림들과 동시에 진동했고 서로의 파동을 느끼며 전율했다. 어쩌면 내가 네덜란드의 보이스 아티스트 져스틴삼가르에게 끌리는 것도 고흐의 그림에서 받은 에너지 파동과 같을까?
특히나 320번째 작품으로 전시된 까마귀 떼 나는 보리밭(Wheat Field with Crows)은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에 더 비장하고 장렬한 슬픔이었달까? 그림 곁을 떠나오는 것이 마치 너무나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연인과의 헤어짐처럼 쉽지 않았다.
떠나오기 싫었다.
헤어지기 싫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자유를 주는 것! 그냥 그의 존재 그대로 자유롭게 자신만의 호흡으로 살아가고 느끼게끔 해주는 것. 내 삶의 양식과 나만의 감정으로 그를 구속하지 않는 것! 예술 작품도 어쩌면 똑 같은 것이 아닐까? 혼자서 소장하고 싶다는 독식의 욕구를 나는 슬며시 내려놓는다. 어짜피 가질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다. 하하하. 다소 또라이 같이 들리려나? 하지만 진실이다.
암스텔담을 떠나며 나는 많이 힘들었다. 나를 붙잡는 것들이 너무 많은 도시!
그야말로 ‘I am sterdam ’이다.
am sterdam에 너무 미련이 많이 남아 기차 시간이 불과 15분남은 시간에 다시 amsterdam 중앙역 맞은편 카페로 들어가 네덜란드의 풍경을 다시 호흡했다. 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고흐와 아름다운 운하와 매우 세속적이나 우아한 휴머니티의 품격이 살아있는 삶의 공간 암스텔담으로.. ‘I am sterda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