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일상여행자를 마치며

2021.2.9.화요일.

by 김은형

파리의 일상여행자를 시작으로 브뤼셀과 암스텔담, 쾰른의 일상여행자까지 2달여에 걸쳐 지난 2018년 1월의 유럽여행을 다시 고쳐서 쓰고 브런치북으로 발행했다. 이 글을 마치면 아마도 세 번재 유럽여행기 암스텔담과 쾰른의 일상여행자가 브런치북으로 발행될 것이다.

어쩌면 어떤 독자는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2018년 유럽여행은 내 평생에 매우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10년 전에도 이태리와 파리로 장기 여행을 떠나긴 했었다. 인도, 몽골, 일본, 중국, 스페인, 포르투갈, 쓰시마, 캐나다, 시애틀 등등 다양한 여행지로 여행을 떠나긴 했으나 오로지 혼자서 여행을 떠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내가 용기가 대단하거나 엄청난 패기가 있었기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의 동기는 단순했다. 브뤼셀로 유학 간 지인이 아파트에 방이 하나 빈다고 놀러오라는 말에 적어도 열흘 치 호텔 비는 공짜겠다는 단순한 잔머리로 홀딱 떠나버렸던 것이다.


짐을 떠나기 두 시간 전에 쌌으니 여행 준비도 엉망이었다. 핸드폰 칩도 나보다 유럽여행을 먼저 다녀온 딸아이가 주문하고 설명해줘서 카타르 공항에서 간신히 갈아 끼울 수 있었고, 구글맵도 처음 사용해봤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여행자에겐 완전한 필수 템이란 것을 여행을 다니며 절감했다. 거기다 나는 영어도 못했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어쩌면 불가능한 여행이었다.


<유럽의 일상여행자>는 오로지 혼자서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서 겪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감행하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가는 나의 모습을 기록했다. 독자 중심이 아니라, 개인의 여행과 내면적 감각과 감정의 변화에 대해 집중해서 쓰다 보니 먹거리와 볼거리 이야기보다는 여행자로서 겪은 사건과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게된 것이다.


어쩌면 사변을 늘어놓는다며, 뻔한 이야기라 식상하다고 생각한 독자도 많을 것이다. 나도 그런 비평을 쏟아 붇는 독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미 2018년에 써놓았던 글을 다시 읽고 수정하며 다시 써가는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뻔한 사변 자체가 우리 삶의 진정한 날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종교적 삶의 탄트라가 직조기에 단단히 매인 날줄처럼 견고하듯이 우리의 사변을 가능하게 하는 생각과 감정과 마음들이 끊임없이 패턴화 되어 반복되어진다는 발견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내 삶에서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그 위의 선대에서부터 반복된 삶의 근원적 DNA 패턴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혼자서 유럽 여행을 다녀온 딸아이의 일기장 속엔 내가 쓴 여행기의 일부 소감이 똑같은 단어와 감동으로 반복되어 적혀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의 소통은 바로 그 뻔한 패턴, 사변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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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것이 최초가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가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수십억명의 인류와 그 인류 안에 담긴 더 많은 경험의 기억과 감정과 언어에서 이미 재현되고 구현된 구시대의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태엽을 감고 있는 오토마타적 존재가 진실일 것이다. 그래서 고전의 중요성이 누누이 강조되어온 것일까? 수백 년이 흘렀어도 고전은 현재를 사는 우리 삶의 고전이며 지혜의 보고인 것이다.


미래사회를 꿈꾸는가? 만약 그렇다면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라. 더 발전된 4차 산업혁명 기반 코로나 이후의 세계의 미래를 보려면 진보하는 과학기술에 의한 더욱 스마트한 앱과 로보틱스 기계문명을 예단하기보다는 오히려 돌로 만든 주먹도끼와 맷돌의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이미 인간은 무엇으로 통제받고 스스로 자유를 헌납하며 기꺼이 사육되어지는 삶을 선택하는지가 만천하에 밝혀졌다.


불안과 죽음의 공포로 정치인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은 이미 구시대의 개념이다. 돈과 권력으로 시스템을 거머쥔 사람들은 이미 지구를 통제하는 방법을 알아버렸다. 미래 세계의 시스템은, 심지어 여행자의 감수성까지도 패턴을 데이터화해서 확보하고 있는 기업에 의해 새로운 경험기억으로 새롭게 정의된 감정으로 패턴화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말았다.


이제 덜 세련된 여행자의 뻔한 사변이 가진 어리숙함이 반짝반짝 빛나는 창조적 생산물의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유튜브로 예전 시대 천재들의 지능을 능가하는 정보력을 가진 존재로 진화했다. 그러니 이제 새로운 시대의 콘텐츠의 새로움이란 오히려 어리버리가 대세가 되고 위안을 주는 것은 뻔한 이치다.


실제로 요즘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 중 이런 패턴을 이미 예과는 책들이 적지 않다. 이게 책이야? 라고 생각하지만 대중들은 그것이 책같지 않아서 선택한다. 이를테면 정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쉼을 위한 책이란 이야기다. 그저 멍때리기 좋은 하나의 생활양식이며 오브제라고 해야할까? 암튼 여행기를 통해 나는 2018년이나 2021년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불안과 안도감이 모두 교차되는 지점을 바라본다. 그리곤 다시 자신과 약속한다.


겸손하자.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이 세계의 아주 미세한 한 부분일 뿐이고 변형되며 건너가는 존재다. 아니 건너가는 존재가 담긴 징검다리일 뿐이다. 나그네가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되려면 나그네의 발아래 납작 엎드려 소리 죽여 나의 존재를 낮춰야한다. 일상여행자의 유럽여행기는 어쩌면 바로 그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준비된 로드스쿨링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적어도 “돌과 사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바보”라는 니체의 말을 이해하게 된 무척 커다란 배움과 성장이 있었던 그랜드 투어였음을 알겠다.


이제 잠시 일상여행자의 여독을 풀며 쉬자. 그리고 봄바람 살랑이면 매향 그득한 어느 날 인도를 여행하며 깨달은 존재의 열림으로 새롭게 독자들을 만나기로 하자.

봄바람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미리 살랑살랑 졸음이 온다. 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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