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Tea톡176.
미셀 투르니에 산문집을 오랜만에 다시 펼쳤지만 여전히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책을 덮으려다 마지막 장을 펼쳤는데 뜻밖에도 번역가인 김화영 선생님과의 대담이 실려 있었다.
대담에는 미셀 투르니에가 오래된 사제관에서 살면서 매일 흡혈귀를 상상하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면서 아주 놀라운 사실과 직면하게 되었다.
독일 작가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장본인 인데다 레마르크가 미셀 투르니에에게 번역일은 오로지 장차 자기 개인의 글을 쓰기 위한 연습으로만 생각하라고 조언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레마르크의 작품을 번역한 것이 스무 살 때였다니 더 대단하고 놀라웠다.
진짜 좋아하는 작가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읽은 것이 내가 스무 살 때였었다. 미셀 투르니에는 작가 지망생은 번역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언어에 대한 장악 능력만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명예도 거두지 못한 채 인내로써 꼼꼼하게 노력하는 과정을 배우는 문학적 덕목의 좋은 학교라고도 썼다.
나는 요 며칠 내 건강을 걱정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로 전화하시는 엄마의 가슴속 이야기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해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타국의 언어로 타자의 언어를 번역해서 문맥을 똑같은 의미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러나 전혀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번역 작업이 참 경이로운 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미셀 투르니에를 통해 몹시도 좋아하던 작가 레마르크를 다시 소환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서부전선 이상 없다><개선문>에 이르기까지 레마르크의 소설에 빠져있던 스무 살 내 가슴속 설렘까지 소환되어 더더욱 좋았던 것 같다.
소설과 산문이 이론서보다 더 많이 팔리고 공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대중의 귀와 눈에 맞춘 글쓰기와 책 쓰기라는 것은 아마도 이런 감동이 포인트가 아닐까? 어느 순간 독자들 삶의 어느 포인트를 건드려 주는 것? 숨겨있던 감정과 감각을 촉발시켜 주는 것?
미셀 투르니에는 책 또한 핏기 없는 한 마리의 새라고 표현한다. 한 권의 책이 살아서 날 수 있게 되려면 바로 독자의 심장에 내려앉아 그의 피와 영혼을 빨아들여하고 그 과정이 바로 독서라고 이야기한다.
작가가 세상에 작품을 내놓는 것은 얼굴도 모르는 군중들 속으로 종이로 된 수천 마리의 피에 굶주린 새 떼를 날려 보내는 것이라고.... 그리고 마침내 독자의 가슴에 내려앉은 책들은 그의 체온과 꿈을 빨아들이며 부풀어 오르고 책은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환상이 분간할 수 없게 섞이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된다고...
-짧은 글 긴 침묵 / 미셀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미셀 투르니에와의 20년 만의 긴 침묵 끝에 드디어 짧은 글을 하나 얻은 오늘 아침!
미셀 투르니에의 말처럼 여러분도 삶의 궁핍한 흡혈귀에 정열과 영혼과 피를 불어넣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