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일 금요일. 빨강 대문
이사 온 지 거의 5년 만에 백발의 위층 집 아저씨와 마주쳤다.
마주쳤다기보다 먼발치에서 그의 백발을 발견했다는 말이 더 명확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뭔가 불쑥 올라오더니
“왜 저 사람은 아직도 죽지 않았지?”
하는 말이 저절로 뱉어졌다.
진짜 말이 마음속에서 불쑥 뱉어진 거다.
5년 전 30년 된 빌라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오면서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했었다.
현관문도 30년 전의 칙칙한 회색 페인트 그대로인지라
경쾌함을 주기 위해 빨간색으로 다시 칠했다.
그런데 3층에 사는 아저씨가 빨강 대문은 빨갱이라며 문제화시키기 시작했고
우리 집 대문은 이후 3개월 동안 계속적으로 주민회의의 주요 안건이 되었다.
심지어 위층 아저씨의 주도로 빨강 대문 퇴출 비상대책회의까지 이루어졌으나 정작 주인인 나는 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이 계속 빨강 대문 원상복귀 통보만 받았다.
백발의 위층 아저씨는 법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웠는데, 그 법이란, 타운하우스 내 주민자치 규칙으로 대문 밖은 공동의 재산이고 대문 안은 세대주의 재산이기에 대문 밖의 컬러는 모두 회색으로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문이 4차원의 클라인의 깡통도 아니고 ,
동전은 양면이 달라도 그 양면 모두를 내가 다 소유하는 것인데 대문은 양면이 같아도 그 양면이 모두 내 것이 아닌 전체와 개인의 소유로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이었다.
도대체 공동주택 대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끼인 경계의 존재!
존재 자체로 말하자면 공동주택의 대문은 매우 비극적인 존재다.
대문이 빨갛게 칠해지던 그날부터 백발의 위층 아저씨는 경비 아저씨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비 아저씨들의 인터폰과 방문이 잇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경비 아저씨들은 제발 이해하고 문을 회색으로 바꿔달라고 나에게 사정 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출장 갔다가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경비 아저씨의 전화를 또 받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밤 12시부터 회색 아크릴 물감과 코팅된 수입 벽지로
대문을 회색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사과 커터가 백발의 아저씨와 닮아 저항의 의미로 대문 밖에 보초를 서게 꽂아두었다.
빨강 대문 싸움은 그렇게 일단락되었고 백발의 위층 아저씨와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인사를 나눠본 적도, 마주친 적도 없었다.
타운하우스 내 주민 친목을 위한 음악회 겸 가든파티도 내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였지만
이사 오자마자 빨강 대문이 이슈화되면서 10번의 가든파티 동안 단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빈약하지만 백발의 위층 아저씨에 대한 내 나름의 저항이었다. 그런데 오늘 먼발치에서 딱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그가 아직 죽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는 악마적인 자신을 보았다.
무의식이란 이래서 정말 무서운 것 같다. 마음속에서 화해와 용서의 절차 없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서 잊힌 것 같았지만, 내 무의식 속에 그에 대한 분노의 응어리가 깊이 잔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덩어리는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혀왔을 거다. 계단이나 현관에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기민하게 촉을 곤두세우곤 했던 자신을 돌아봤다.
결국 나는 백발의 위층 아저씨를 저주하고 공격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공격하고 자해하며 괴롭힌 것이다. 그냥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그와 나의 차이를 인정했다면 벌써 해소되었을 긴장감을 5년이나 안고 살면서 자신을 괴롭힌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무게로 내 삶은 무거웠을 것이다.
백발의 위층 아저씨가 아직도 마음속에서 용서된 것은 아니지만, 이젠 내가 나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려놓아야 함을 알았다. 그보다 더 먼저 깨어야 할 것은, 내 삶의 목표가 빨강 대문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평화로운 평정심으로 삶을 여행하듯 즐기며 누리는 것임에 깨어 있어야 한다. 적어도 타자에 대한 미움과 몰이해로 자신을 학대하는 어리석음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자신과 다르다고 나를 비난하고 단죄한 백발의 위층 아저씨와 내가 사실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똑같은 무게임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살벌한 마음을 낸 나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대해 참회기도를 올리는 새벽이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