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일기 14일

2020년 10월 6일 화요일. 대관령 못난이 사과

by 김은형


대관령에서 사과가 왔다. 못난이 농장의 사과다.

아름다운 정원과 아름다운 주인장들의 삶이 녹아있는 살바토레 펜션이 발신지다.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과 상자를 열다가 문득

새벽부터 음악을 들으며 정원을 손질하고 커피를 마시는 사장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은 어떤 음악이 살바토 렌 카페를 가득 메웠을까? 오늘도 웨지우드 커피 잔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계실까? 아님 사모님과 루이뷔통 시장바구니를 들고 평창 5일장에 가셨나? 아님 강남에서 호텔 파티에 입고 다니던 밍크코트를 입고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을까?

서울 토박이 디자이너였던 펜션 주인장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은 진짜 유니크 그 자체다. 돌이켜보니 작년 이즈음에 대관령에 여행을 갔었나 보다. 동행했던 숙영 샘이 대관령 사과가 맛있다고 그때도 돌아오는 길에 사과를 사러 갔었다.


일 년 사이에 참 어마어마하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사이 숙영 샘은 대전을 떠났고, 코로나 사태로 세상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단번에 바뀌었으며, 딸아이도 성장해서 독립을 했다.


사과 한 알이 다시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비바람을 견디다가 과일로 영글어서 나에게 오기까지 참 긴 세월이 담기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깨물어 먹기엔 너무나 소중하다.


보내주신 펜션 사장님의 마음도 소중하고 감사하고, 사과에 담긴 일 년 동안의 삶의 여정도 귀하고 소중하고, 사과가 다시 열매 맺어 완숙한 과일로 성숙할 때까지의 세월 또한 너무 귀한 마음에 혼자서 먹지 못하고 달 꽃집과 언니네를 나눠줬다.

내일 새벽엔 함께 기도하는 도반들에게도 공양을 올리고 소중하고 귀한 아침을 시작하려 한다.



코로나로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고, 우린 바이러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확정되지 않은 미래의 불안감으로 서로와의 관계를 멀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류가 없는 삶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키에르 케고오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결국 고독이었다.

온라인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해서 관계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모든 생명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직접적인 교류가 있을 때 존속의 시간이 길어진다. 어쩌면 음양의 조화란 그런 것이다. 서로의 진동과 주파수를 맞춰 합일을 이룰 때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 그야말로 에너지의 파동이 합일되었을 때 우린 안정감과 행복감을 얻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동기 감응할 수는 있지만 실체 없는 감응은 결국 허기를 낳는다. 짝사랑도 가상현실의 에너지라 허기지고 외로운 것이다. 바이러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가상현실 시나리오를 진짜 세계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오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과 한 알 나눠 먹는 기쁨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삶은 이미 삶이 아니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정말 어떤 치명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경험하지도 않은 채 스스로 격리와 고립을 선택함으로써 지구에 기침소리와 감기를 종식시켰다.


우린 이미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다. 코로나를 언제나 걸리고 회복하기를 반복하는 감기처럼 생각하고

감기가 만연했던 작년 가을, 사과가 익어가던 그 계절처럼 우린 교류하고 손잡고 눈 마주치고 얼싸안으며 삶의 기쁨이란 에너지를 나누는 시절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아니 새로운 미래라는 사과를 키우고 영글어 따게 해야 한다.


대관령의 바람과 햇살이 키운 탓인지, 사과가 진짜 단단하고 시지 않으면서 기가 막히게 달고 맛있다.

단 한 번의 여행으로 살바토레 펜션 사장님 부부와 우정을 나누게 된 내 삶에 감사한다.

만남이란 그토록 새콤하고 달콤한 것이다.

만남의 접선이 없는 세계는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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