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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존재에게선 냄새가 난다.

(feat. 오늘도 맥주, 내일 퇴고할 수 있지…..?)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는 “엄마, 굿모닝!”이라고 말하며 뽀뽀를 한다. 아이가 내 입가에 묻힌 침이 달갑게 느껴진다. 닦지 않아도 가슴속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기분이랄까? 아이가 주는 애정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얼마나 행복인가!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뽀뽀를 되돌려주고 있으면, 거실에 있던 남편이 저 멀리서 달려오더니 입을 쭈욱 내민다. 아, 세상에. 나는 숨을 꾸욱 참고, 남편에게 최대한 타액이 덜 묻도록 건조한 뽀뽀를 건넨다. 사람이 줄 수 있는 애정의 양에도 한계가 있는 걸까. 아이와의 스킨십은 보드라운 벨벳 같은 반면에, 남편과의 접촉은 까끌한 수세미 같다. (미안해, 남편) 남편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옥시토신이 증가하고,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해서, 뇌는 생존 전략으로 자손보호를 우선순위에 두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출산 후 일정 기간 동안 생식활동보다 양육 본능이 우선시 돼서 그렇다고, 일시적인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니 남편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그러다가 오늘, 아이의 입에서 남편과 같이 입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한 밤 중에 흘린 땀으로 목덜미에서 시큼한 냄새마저 느껴졌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던 아이에게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아니, 냄새가 맡아지기 시작한다. 아기의 똥기저귀를 바라볼 때는 향보다 색깔과 모양이 우선이었건만, 다섯 살 무렵 아이의 대변은 닦아줄 때마다 숨을 멈추게 만든다. 언제쯤 아이가 스스로 엉덩이를 닦을 수 있을까, 초조하면서도 절박하게 기다린다. 대변 냄새가 나기 시작할 무렵, 아이는 걷기 시작했다. 입냄새가 나기 시작한 오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이제 아이가 아니라 어린이이자 학생이 될 테다. 그렇게 얼마간 있다 보면 곧 아이의 호르몬 냄새를 맡게 되겠지. 그 퀴퀴하고도 눅진한 냄새를 확인할 때, 나는 아이를 남성이라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냄새가 나면 거리를 둔다.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도 거리 두기의 신호일지 모른다. 아이가 아니라 독립된 한 명의 인간으로 인식하라고. 지금이 그래야 할 시점이라고 말해주는 신호일지 모른다. 나는 아이의 입냄새를 통해 ‘아기’라고 부르던 호칭을 그만두었다. 아기는 자라 어린이가 된다.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고,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챙겨 들고, 학교에 도착하면 작은 손으로 우유갑을 조심스레 뜯고, 친구들과 어울려 웃다가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제 자리로 돌아갈 줄 아는 어린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호르몬의 냄새를 뿜어낼 쯤에는,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몸을 던지며, 자신을 끌어당기는 사람에게 자석처럼 끌려갈 것이며, 세상이 가르쳐주는 관습을 부정하며 반항적이고도 완전히 독립된 개체로 나아갈 것이다. 만곡을 이루는 삶의 곡절을 오르고 내리길 반복할 때쯤 자신만의 체향을 흠뻑 발산하는 어른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렇듯 독립된 존재에게서는 냄새가 난다. 나는 생애주기마다 어떤 냄새를 풍겼던가? 현재는 어떤 체취를 갖고 있으며, 미래에는 어떤 잔향을 남길까? 아이의 입냄새 하나에 참으로 먼 길을 돌아본다.


오늘의 아들 냄새는 햇빛을 과하게 받아 땀이 삐죽나는 쪼그라든 빨간 대추냄새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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