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북스를 8년 가까이 운영하며 빚이 생겼다. 멀리서 볼 때 나의 삶은 굉장히 빠르게, 그것도 바쁘게 움직이기에 주변에서는 전혀 짐작조차 못하는듯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활동하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많은 독서모임과 북토크쇼를 운영하며 번지르르해 보이는 일상 뒤에는 매일 저녁 술을 홀짝이고 있는 내가 있다. 빚 때문에 괴롭다는 하소연을 하려는 건 아니다. 일억의 빚 중 사 분의 일 정도는 갚았다. 어쩔 땐 오만 원, 많이 번 달은 삼십만 원. 그렇게 매일 조금씩 갚다 보니 줄어드는 재미마저 느꼈다. 더욱이 내게는 낙관이 있다. 아직 일 할 수 있다는 확신,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열정이 있다. 그렇기에 잠깐씩 찾아오는 고뇌의 시간이 있을 뿐, 빚은 내 일상을 지배하지 못한다. 다만, 가끔, 빚을 갚느라 일상에서 급하게 돈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 미리 갚아버린 빚이 아쉬운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뿐.
얼마 전 한 학교에서부터 도서 주문이 들어왔다. 수중에 목돈이 없어 옆에 있는 남편을 쳐다보았지만, 그도 이미 내게 호주머니를 탈탈 털린 지 오래였다. 고민 끝에 나는 가족 단톡방에 채팅을 남겼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넉넉하게 3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며, 빠르면 한 달 뒤, 늦으면 두 달 이내로 갚을 수 있다는 구구절절한 메시지였다. 연락을 할 최후의 수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메시지를 제일 먼저본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는 전화를 하자마자, 단톡방에 있는 메시지부터 지우라고 말했다. 나는 혹시 뭔가 실수했나 싶어서 서둘러 메시지를 지웠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이어지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한 해 전 나는 가족이 모은 계비를 끌어다 쓴 일이 있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은행 빚보다 먼저 갚으려 노력했고, 결국 갚았다. 다시금 그 돈에 손을 대자니, 곧 결혼을 앞둔 남동생이 떠올랐다. 계비를 빌려 쓸 기회는 이제 남동생에게나 있다. 부모의 돈을 빌려 쓸 기회도 이제는 수십 번 그들의 지갑을 오갔던 내게 있기보다는, 남동생에게 있을 터였다. 이런 일 아니면 평소 안부전화도 하지 않는 무심한 딸이건만, 아빠는 매번 참으로도 상냥히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부모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전화를 거는구나 싶다. 전화를 받는 그들은 두렵지도 않을까? 이번엔 무슨 말을 하려고, 이번엔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전화를 하는지 심장이 떨리진 않을까. 나는 그네들의 용기가 문득 전화를 받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음이 그치고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메시지가 지워진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엄마 몰래 숨겨둔 비자금이 있다고, 엄마에게 계속해서 숨기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나에게 맡겨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딱 말한 금액만큼만 빌리겠다고 했지만 그는 전재산 700만 원을 보내왔다. 남은 잔돈을 돌려주고 싶다는 말에도 아빠는 "잠시만 갖고 있어"라고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아빠는 나를 비자금 은닉처처럼 말했지만, 실상 그 속에 숨겨진 아빠의 마음을 안다. 지난번 계비를 빌리고자 주저하던 내게 남동생이 '누나는 그렇게 종일 일하면서, 돈이 왜 없어?'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책방지기는 실로 보람을 휘장으로 삼은 명예직이라, 아무리 많은 활동을 하던 늘 빈털터리임을 가족 앞에서는 드러내기가 창피했다. 그것도 남동생 앞에서는 더욱이.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이번에 대학교에서 강연도 나가고, 학교에 초청받아서 북토크쇼도 할 거야" 실로 부질없는 허세였다.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에는 본질적인 불균형이 존재한다. 언제나 조심스러운 기울기가 있다. 도움을 주는 이는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 혹은 도와주는데서 오는 만족감 혹자는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테다. 반면 도움을 받는 사람은 감사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무력감이나 부채감 때로는 수치심에 가까운 감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렇듯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는 균형 잡히지 않은 감정의 간극이 숨어져 있다. 하지만 아빠에게 늘 도움을 받을 때면 나는 이런 불균형을 느끼지 못한다. 가족관계라서? 아니, 아니다. 남동생에게 돈을 꿨을 때의 마음의 침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빠에게는 같은 처지에 대한 이해가 있다. 빚이 있어본 자, 열심히 일해도 채워지지 않는 독을 바라봤을 때의 아득함을 느껴본 자, 꾹 다문 입꼬리를 겨우내 올리며 웃어본 자. 그렇기에 돕는다. 그 처지에 대한 동질감, 입장에 대한 이해가, 같은 높이에 있다는 위치가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준다. 그렇기에 도움을 구하는데에서 마음의 짐을 덜고 안락을 얻는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독립한 딸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는 만료기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