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은 내가 누구인지를 잊게 만들어, 결국 나를 찌르는 칼로 돌아온다
요새 학교에 책을 납품하는 일이 제법 생기고 있다. 하루에 한 권의 책도 팔기 쉽지 않은 나날이 계속되다, 납품 의뢰가 올 때면 저도 모르게 수화기를 대고 굽신거리게 된다. 상대방은 보지도 못하건만 나는 매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인다. 그리고는 되풀이하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나를 남편은 헛웃음 지으며 쳐다보곤 했는데, 꽤 오랫동안 일을 쉬고 있는 남편은 자신도 그 납품의 과정에 합류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리라. 남편은 자잘하게 주문 들어오는 도서를 여기저기 배달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이 고생하는 대신, 나는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간혹 글을 쓰기도 하고, 노트북을 두들기며 여러 서류일들을 쳐냈다.
그리고 오늘, 보틀북스 근처에 있는 한 학교로 납품을 가게 되었다. 나는 도서 목록을 프린트해 주며, 남편에게 어서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남편은 어쩐지 찌글찌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으나 미처 말하지 못하는, 조금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그렇게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일, 납품길에 동행하게 되었다. 카트로 이층 도서관까지 책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미 땀이 배어 옷이 자꾸만 달라붙었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선생님은 "업체가 왔네요"라고 말하며, 책을 옮길 위치를 말해주었다. 나와 남편은 책을 순번대로 나열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과 함께 누락되거나 파손된 도서가 없는지 검수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누락 도서를 발견했다. "하, 237번이 없네요" 선생님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숫자들, '401번' '432번'···.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 거칠게 종이를 넘기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어쩐지 내 가슴에 박혔다. 검수가 끝나고 보니 총 13권이 누락되어 있었다. 그 열셋이라는 숫자는 내가 얼마나 실수가 많은 사람인지 증명하는 듯했다. 선생님께 사죄를 하고, 누락된 도서에 대한 추후 절차를 안내했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노란색 밴딩끈을 주워 담고, 첩첩히 쌓여있는 박스들을 포개어 차로 돌아왔다.
우리는 차 안에서 에어컨을 강풍으로 돌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 흐르는 땀을 어깨의 문질러 닦아낸 남편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왜인지 기분 나빠"라고 말하는 내게, 그는 씩 웃기만 할 뿐이었다. 남편이 매장까지 다시 데려다주는 동안 나는 속으로 이런저런 항변을 시작했다. ‘내가 정말 중대한 실수를 한 걸까? 일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해야 하는 게 맞긴 하지’ ‘그렇지만 책이라는 건 만드는 과정부터 주문, 포장, 바코트를 붙이고 납품하기까지 사람의 손이 스치지 않는 일은 없지 않은가. 치킨집보다 많다는 출판사에게서 각각 책을 받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실수가 없길 바라는 것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거 아닐까.’ 그러면서도 나는 선생님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쭈그려 앉아 열심히 책 등을 살펴보고 있던 선생님,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온 앳된 그 얼굴, 꼼꼼히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던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다. 내 실수 때문에 불필요한 행정처리를 한 번 더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괜히 행정실 하고 전화를 한 번 더 하게 되고, 행정실에서도···. 결국 내가 진정으로 참을 수 없는 건 밖이 아니라 안이었다. 그야말로 나 자신이 가장 미웠다. 내가 조금 더 꼼꼼했더라면, 아니, 일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줬다면.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다음에도 이런 실수를 또 하게 될 것이고, 세상은 늘 그렇듯 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이렇게 울 것이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달래는 긴 심문의 끝자락에서, 나는 이 감정의 근원이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오늘의 일은 별 일이 아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후속조치를 취하면 그만일 일, 진심으로 그뿐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기분 나빠하고 울고야 마는 이 마음의 근원에는 결국 은밀한 자만이 깔려있다. 남편에게 기어이 떠넘기고 싶어 했던 짐의 정체가 이제는 어렴풋이 보였다. 그것은 나의 위치, 현실의 직면이었다. 이름이 아닌 '업체'라고 불리며, 순간마다 고맙고, 움직일 때마다 죄송스러운 현실말이다. 며칠 사이 강의를 나가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 자부하며 얼마나 자만하고 교만해졌던가 반성하게 된다. 나는 자본이라고는 육체밖에 없는 사람이다. 나는 본디 몸으로 일하며 스스로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다. 땀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타인과 부딪히며 자주 부서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의 진실된 일상이자 동시에 나를 가장 단단하게 빚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괜히 높아지던 어깨를 조용히 낮추고, 내가 사는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가 다시 허리를 숙여야 했다. 책들의 묵직한 표면을 만지다가 손마디가 갈라지고 터지는 일상으로 돌아가야한다. 육체의 소진으로 자만을 깎아내리며, 내가 결국 어떤 존재인지, 어디쯤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를 잊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