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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 되는 플레이어를 멈추지 않는 마음

남편이 남의 편으로 느껴질 때가 간혹 있는데, 바로 오늘과 같은 순간이다. “너, 그 말 벌써 열 번도 넘게 더 했어.” 단박에 느껴졌다. 고작 한 문장으로 그가 얼마나 지겹고 짜증이 났는지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울컥 화가 치솟곤 하는데, ‘내가 정말 열 번이나 말했나?‘라고 잠시 놀랐다가, 결국 ‘아니, 처음 들은 것처럼 들어줄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울컥 폭주해버리고 만다. 무엇보다, 열 번이나 말할 만큼 내게는 강렬한 사건인 게 분명한데, 정작 나는 그토록 여러 번 말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마는 건 왜일까? 남편의 반응이 너무 약해서, 혹은 서로 간 주고받는 대화라기보다 일방향의 전달이라서? 만족스럽지 못한 대화는 아무런 여운도 남지 않았기에, 결국 내가 그 말을 했다는 기억마저 희미해진 것은 아닐까. 서로 통하지 않는 대화는 이렇게 말의 흔적마저 지워버리는 법인가.


시어머님도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편이었다. 축제 구경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시장에서 아이가 채소 장바구니를 들어주었을 때 등등. 그때의 감정은 희석됐을 만도 하건만, 늘 울음과 웃음을 동반했다. 나이 먹을수록 과거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은, 생에 새로움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길 몇 번이고 반복되자, 결국 나는 속으로는 지루함에 드러눕고, 표면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달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친정에 있을 때는, 이상하게도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 친정 엄마 역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참 똑 부러졌다느니, 아들이 소소하게 사고 칠 때, 나는 한방에 터트린다느니. 그 말이 지겨워 나는 핀잔을 준다. “엄마, 제발! 그거 이미 백 번도 더 말했어.”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남편보다 더 너무했구나 싶다. 열 번도 아닌 백번이라니! 남편은 남의 편이라지만, 딸은 그저 남의 편에 딸려온 인연일 뿐이었나. (엄마가 네 같은 딸을 낳아서 키워봐야 정신 차린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문득 늘 대화에 함께였던 아빠는 정작 한마디도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만 나쁜 딸을 만들다니?) 그래서 엄마가 잠시 과일을 가지러 부엌으로 향했을 때, 아빠에게 소곤소곤 물은 적이 있다. “아빠도 만 번쯤 들었던 이야기 아니야? 왜 가만히 듣고만 있어!” 아빠는 부엌 쪽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금 내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그저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 다음번에는 나름 해결책을 제시했고,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하면 호응을 과하게 해 보다가, 그래도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이 사람은 지금 그때의 순간으로 여행 중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아빠는 “그냥 들어줘, 시간도 많은데”라고 덧붙였다. 타이밍 좋게 엄마가 복숭아를 들고 들어왔다.


아빠의 말을 듣고 나는 얼마나 여유가 없는 사람인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복되는 말을 들으면 시간낭비라고, 결론만 명확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직설적으로 제시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 사람이 처했던 사건, 사건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만의 맥락, 과거로 풍덩 빠져드는 그 사람만의 감각을 전부 무시하고 현재의 나의 상태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지루함과 권태, 시간낭비와 효율 등 한 사람을 묵살하는 단어들을 어찌나 쉽게 떠올렸던지.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고작 ‘들어주기’만 함으로써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마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의 같은 이야기를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또 듣게 될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 반복에 깃든 마음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그 시간을 함께 통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나 또한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나는 타인의 인내를 빌리며 살아갈 테고, 누군가가 내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순간에 위로받을 것이다. 결국 타인을 구원하는 일이 곧 나를 구원하는 일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오늘이 시작이 될 것만 같다. 누군가의 오래된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구원의 연습일지 모른다. 둘이서 기울이는 술에 어느덧 취해버린 남편이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일을 천 번째 풀어놓는 오늘이야 말로. 나는 그 말에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반응을 하며 내 앞에 놓인 술잔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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