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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걷기왕>, 느려도 괜찮아!

중요한 건 '끈기'


<걷기왕>은 사랑스러운 성장영화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곡선을 지닌 작품은 아니다. 주인공 '만복'은 그 어떠한 이동수단을 타더라도 멀미를 한다. 따라서,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이동수단은 두 발 뿐이다. 자신의 발걸음만을 믿고 의지해야만 하는 만복. 그녀는 이름처럼 '걷기왕'이다.


매일 편도 두 시간의 거리를 걸어 학교를 오가는 만복. 공부에 딱히 재능이 없는 그녀에게, 담임은 육상부에 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만복은, 육상부 선수가 된다. 그녀의 종목은 '경보'다. 스파르타 선배 '수지'와 함께 진행되는 훈련. 수지의 눈엔 딱히 재능도, 열정도 없어 보이는 만복이 탐탁지 않다. 사실이 그랬다. 만복은, 공부에 재능과 열정이 없고 운동은 쉬워보여서 육상부에 들어온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담임의 제안에 이끌려 '얼떨결에' 들어간 격이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훈련부터 쉽지 않다. 쉴새없이 걷고 뛰어야만 하는 훈련에 코피까지 쏟는 만복.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복은 '열정'을 알아간다. 원하는 꿈이 없었고, 따라서 목적과 열정도 없었던 만복의 삶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이끌려 시작했던 것이, 열정과 꿈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만복은 자기주도적인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만복은 치명적인 핸디캡을 갖고 있다. 멀미증후군이라는 핸디캡이 그녀를 걷게 만들었고, 별 것 아닌 듯 보였던 걷기가 자신의 재능으로 인정받게 됐다. 영화에는 만복 외에도 핸디캡을 지닌 인물이 있다. 바로 수지다. 수지는 치명적인 길치였지만, 그럼에도 달리기에서 재능을 보였고, 그로 인해 부상을 당했지만 역경을 이겨내 육상부에서 활약 중이다. 만복과 수지 모두 '말 못할(입 밖으로 쉽사리 꺼내지 못할)' 핸디캡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걷기왕>은, 핸디캡을 극복한 열정적인 소녀의 성장담만을 말하는 영화일까? 아니다. 이 영화는, '느려도, 잠시 쉬어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지나친 열정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품고 있다. 이는, 승부의 장인 대회에서 표현된다. 승부욕에 불탄 만복은 초반부터 무리한 레이스를 펼친다. 그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도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만복의 첫(그리고 마지막) 경기는 실패로 이어진다. 하지만, 영리(?)하게도 만복은 적절한 때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거기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자신에게 적정한 정도를 판단하는 것 또한 삶의 지혜다. 한계와 실패를 경험하고 그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할 줄 아는 삶 또한 현명하다는 것이다. 만복이 걸었던 길은, 무한 경쟁 시대에서의 깨달음을 선사한다. 모두가 같은 라인에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게 맞는 것일까? 열정만을 싣고, 자신이 믿는 재능이 아닌 길을 걸어나가는 게 현명한 것일까? 영화는 이것을 물음한다.


영화를 보며, 일본의 슬로우무비들이 연상됐다. 느리고 소박하지만 삶의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영화들 말이다. 이같은 영화들은 우리에게 과도한 경쟁과 욕심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남들과 비교하는 삶이 아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택하고 거기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걷기왕>도 그와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타인들에겐 이동수단을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만복에게 그것은 지옥 같은 순간이다. 하지만 만복은 그것을 '장점'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녀는 '걷기왕'으로서 '성공'을 거머쥔다. 지금 당장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자신의 꿈을 찾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끈기'다. 만복의 꾸준함이 불러온 성공처럼 말이다. 이 시대 모든 열정과 경쟁의 압력에 짓눌린 청춘(사실은 모두)들을 응원하는 영화 <걷기왕>. 배우 심은경이 맛깔스럽게 구사해낸 코믹 연기가 영화의 사랑스러움을 한층 더 배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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