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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 리뷰

팍팍한 현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차디찬 현실에 놓여있지만, 결코 매 순간을 포기하지 않는 한 청춘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미소. 가사도우미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고 있지만, 위스키와 담배, 남자친구 한솔(자신과 사정이 비슷한)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다.


미소의 일당은 하루 45,000원. 지출비로는 집세와 약값, 담배와 위스키 비용이다. 담배와 위스키값 외엔,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집, 그리고 약. 한데, 미소는 가장 필요해보이는 집과 약을 포기하고 담배와 위스키에 기꺼이 지출한다. 각각의 비용이 2,000원씩이나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미소의 행동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미소가 잠자리를 위해 찾아간 전 밴드 동아리 친구들의 태도처럼 말이다. 방을 뺀 후, 찾아간 옛 친구들은 미소에게 '아직도 담배와 술을 포기 못 했냐', '집이 없을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힘드냐', '이렇게 찾아오는 건 염치 없는 행동이다'는 식으로 그녀를 비난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정 역시 썩 괜찮아보이지는 않는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각기 다른 문제들로 고충을 앓고 있는 그들이다.


물가는 치솟지만, 일당은 제자리인 상황. 이는, 미소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은 청춘들도 고개 끄덕이며 공감할만한 현 세태다. 많은 청춘들이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정서까지 메말라가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정, 사랑도 쉽사리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소는 이름처럼 예쁜 미소와 따듯한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집은 없지만, 친구와 연인,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을 지닌 미소를 향한 시선에는 연민과 따스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소공녀>는 극단적인 청춘을 설정해, N포 세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직을 위해 링거를 맞아가며 일하는 사람, 결혼 생활이 못마땅해 투덜대거나 눈치 보며 살아가는 사람, 결혼을 위해 아파트 대출을 했지만 이혼 위기에 처해 빚더미에만 나앉게된 사람, 부모에 얹혀사는 노총각, 돈벌이를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며 살아가는 사람 등. 이 모든 면들이 N포 세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다.


미소가 매일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못하듯, 다양한 청춘들이 쓰디쓴 술 한 잔과 함께 개인의 쓰라림을 삼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엔딩 시퀀스는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하고 있다. 특히, 바에서 미소가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전의 온갖 고충 섞인 장면들을 모조리 잊게 만드는, 한줄기 위로같은 신(scene)이다.


집과 약은 포기해도 담배와 위스키, 연인에 대한 취향은 확고한 미소의 모습은 처량해보이는 한편, 당당하고 강인해보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미소와 같은 삶을 바라는 청춘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공녀>는, 현실이 이토록 차갑고 시리다는 것, 그래서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에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을 작품이다. 


많은 이들의 삶을 살아보는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미소 역시, 팍팍한 삶을 한 번 더 직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집과 검은 머리카락은 포기했지만 취향만큼은 포기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듯한 미소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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