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데 자라고 싶지 않아서
어린이실 첫 방문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소인국에 온 거인이 된 기분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보니 쿠션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아이, 엄마가 조용히 읽어 주는 책을 듣고 있는 아이 등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이 보였다. 종합자료실의 딱딱한 분위기에 비해 어린이실은 컬러풀하고 편한 분위기였다. 다행스럽게도 아이와 함께 온 어른들이 있어 아이들도 어린이실에 온 어른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역시 혼자만의 걱정이었던 것 일 뿐이었다.
그랬다. 나는 걱정이 많은 편이다.
걱정이 너무 많아요
제목은 매우 익숙하지만 걱정이 많은 내게 흥미로운 책 제목이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걱정이 있지? 저자는 어떻게 걱정을 해소시켜줄까?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매일을 즐겁게 사는 그'
정말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글쓴이의 소개에 내용이 더 기대되었다.
주인공은 알프레도라는 소년이다.
알프레도의 머릿속에는 무언가 계속 맴돌고 있는데 그 '나쁜 생각'들은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인지도 모른다.
걱정이 너무 많아요 中
알프레도의 표정이 참 익숙하다. 지하철이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현대인의 표정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각자의 '걱정'이 회오리 치며 맴돌고 있는 것일까
알프레도의 걱정은 친구와의 말다툼, 엄마의 잔소리, 영어시험, 병원 가는 것, 머리부터 다이빙을 해야 하는 것.. 등 너무 많다.
알프레도는 걱정과 함께 등교했지만, 다행히도 친구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인사해줬고, 엄마는 잔소리 대신 이마키스를 해줬고, 영어 시험은 영어 선생님이 아파서 신나는 노래를 불렀다. 오후에 아빠와 간 병원에서는 엄지 척 스티커를 받고, 다이빙 게임은 재밌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와 아빠와 알프레도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샤워를 했다.
알프레도의 하루는 걱정보다 멋진 하루였다.
걱정이 너무 많아요 中
어릴 적부터 걱정이 많은 편이었는데 늘 엄마는 그 걱정은 대수롭지 않거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기에 어느 순간부터 걱정을 누군가에게 늘어놓지 않으려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엄마의 대답처럼 걱정은 어른이 되어서 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 때의 걱정이나 불안함은 오히려 실수를 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래도 걱정보단 제법 멋진 하루들이었다. 알프레도의 걱정은 지나온 나의 걱정들을 떠올리게 했다. 늘 시험이나 중요한 발표를 앞두기 전날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중요한 발표를 앞둔 날..
새 학기가 처음 시작하던 날..
새로운 운동을 배우던 날..
건강검진이나 병원에 가기 전 날..
이번 달에 정리해야 할 일..
걱정을 나열하다 보니 어른이 되고 걱정은 새로운 접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보다는 해야 할 일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늘어난 것 같다. 지금의 걱정은 주로 잘하고 싶은 욕심에서 오는 것 같다.
나의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더 많은 일을 잘 해내고 싶어서..
걱정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또 다른 걱정이 생겨난다.
아마도 걱정은 걱정을 먹고 자라는 것 같다.
걱정은 신기하게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걱정은 더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불안하게 만드는 마음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타인에 대한 걱정은 사랑이 되기도 하고 그 사람에 대한 구속과 잔소리가 되기도 한다. 걱정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행동의 씨앗이다
내가 걱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은 글을 쓰는 순간이다. 때로는 더 잘 쓰고 싶어서 시작을 못할 때도 있지만 나의 걱정들은 글쓰기를 통해 해소된다. 마치 해우소를 다녀온 듯 머릿속의 걱정이 종이 한 장 펜 하나 아니면 스마트폰 메모 하나만으로 사라져 버린다. 요즘 같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참 가성비가 좋다.
걱정을 나열하다 보니 왜 내가 자기계발서가 아닌 동화책을 읽고 싶었는지 알 것 같다
잘하고 싶은데 자라고 싶지 않아서
걱정이 많아지는 날 우리는 알프레도처럼 걱정을 피해 아무리 뛰어도 걱정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막상 부딪혀보면 생각도 안나는 걱정 일지도 모른다.
어린 날의 걱정이 모두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