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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빈 Jan 18. 2019

잘가, 나도 어떻게든 살아내 볼게.

영화 <소라닌> (ソラニン, 2005)

상온에 놔 둔 감자는 녹색으로 변하며 싹이 튼다. 감자의 싹엔 독이 들어 있어 제거하지 않고 섭취할 경우 심한 복통을 유발한다. 이 독은 모든 감자에 다 들어 있지만, 싹이 트기 시작하면 양이 늘어나 복통과 설사를 유발한다. 솔라닌. 감자의 싹에 있는 독성 성분은 평범한 식자재에게 이별을 의미한다. 


영화 <소라닌> (ソラニン, 2005)은 감자의 독을 제목으로 한다.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는 평범한 청춘들에게 어떻게 비극이 찾아오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도.



영화는 주인공 커플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말단 회사원 이노우에 메이코와 디자인 회사에서 프리터로 있는 타네다 나루오. 둘은 같은 대학교 밴드부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갔고, 현재 도쿄의 메이코네 집에서 동거중이다. 밴드부에서 만났지만 메이코는 제대로 악기를 다루진 않았다. 다만 타네다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밴드부 멤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합주실에서 합주를 하며 음악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역시 마지막 남은 취미활동의 일환일 뿐, 다들 음악을 통해 제대로 성공하자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상사의 끈적한 잔소리와 얌체짓만 골라서 하는 후배 사이에서 고민하는 메이코가 회사를 나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타네다는 잠결에 "내가 어떻게든 해 볼테니깐"라고 말한 책임감을 느끼지만, 그 역시 마땅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하는 밴드 활동은 힘이 나지만 돈이 될 리는 없고, 알바로 하는 일은 박봉인 주제에 마음에도 안 든다.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베이스 기타를 치는 카토는 아직 대학도 졸업 못 하고 있고, 드럼을 치는 야마다(빌리)는 아버지의 약국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다들 어떻게든 살아가고는 있지만, '꿈을 향해 돌진'하기 보다는 그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메이코마저 회사를 나오면서 타네다의 마음엔 부담감이 더 커졌지만, 사실 타네다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메이코 역시 이를 간파하고, 타네다에게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 보라고 부추긴다. 남의 평가에 두려워하지 말고 정정당당히 승부하라고. 메이코 역시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직장에서 나왔기에 하는 말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메이코 본인에게 던진 말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살아오면서' 계속 피하기만 해 온 것은 메이코 본인도 마찬가지 였기에.


결국 타네다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다. 자작곡인 '소라닌'을 만들어 녹음하고 녹음 CD를 프로덕션들에 보내 데뷔를 기원한다. 별다른 경력도 없는 신인 밴드에게 관심을 보여준 곳은 단 한 곳. 그러나 그 프로덕션에서도 그들에게 자신의 회사 그라비아 모델의 백 밴드 역할을 제안한다. 모욕적일 수 있는 제안이지만, 이 기회마저 뿌리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것을 안 타네다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킨다. 긴 침묵이 이어지고 함께 동행한 메이코가 제안을 거절하고 타네다의 음악 도전은 실패로 돌아선다.


타네다는 프로덕션에서 자신에게 모델의 백 밴드 역할을 요구한 직원이 밴드 '쿤넬러스'의 사에키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 역시 과거에 수준급의 음악을 했지만, 지금은 프로덕션에서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결국 타네다는 사에키에게 '자존심보다 중요한 게 생긴 거지'라는 말을 듣고 만다. 이후 타네다는 메이코에게 강에서 보트를 타면서 헤어지자고 말한다. 밴드는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님 일을 도우며 살자고 말한다. 그러나 메이코는 그런 것은 싫다며, 타네다가 "어떻게든 해 볼게"라고 말 한 만큼 제대로 기운 차려달라고 말한다. 그 말 뒤로 타네다는 메이코의 곁을 떠난다.



타네다가 사라지고, 메이코는 깊은 무기력증에 빠진다. 일주일 가까이 지나고 나서야 타네다와 연락이 닿아 그가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밴드도 다시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이 그가 타네다에게 들은 마지막 메시지였다. 밤낮없이 일 하고 메이코네로 돌아가던 타네다는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메이코는 다시 꽃집에서 일하면서 생활을 이어가지만, 여전히 타네다의 죽음은 가슴 한 켠에 남아있다. 그렇기에 메이코는 다시 밴드 친구들과 연락한다. 타네다가 마지막으로 불렀던 그 곡, 소라닌을 자신이 부르고 싶다고. 영화는 메이코가 작은 클럽에서 소라닌을 부르면서 끝난다. 


소라닌. 영화는 시작부에 메이코의 집에서 산더미채로 감자를 받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에 메이코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땐 관리가 되지 않은 감자들이 싹을 틔우기도 한다.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그러나 어느 요리에나 들어갈 수 있는 흔한 식자재인 감자.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우리의 청춘 역시 감자와 같은 것이 아닐까. 감자의 독처럼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싹을 틔고 못 쓰게 되어버린다. 

たとえばゆるい幸せが (만약 느긋한 행복이) 
だらっと続いている (영원히 계속된다면) 
きっと悪い種が芽を出して (분명 나쁜 씨앗이 싹을 트고) 
もうさよならなんだ (이별을 맞게 될 것이야) 



그래서 영화는 말한다. 잘 가라고. 우리의 행복했던 순간들도, 너와의 모든 추억들도. 너는 가버렸지만,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겠다고 선언한다. 타네다(種田, 씨앗)는 떠나갔지만, 메이코(芽衣子, 싹)은 남아서 살아가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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