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백안에는 실내화가 있다. 동훈은 할머니를 엎고 언덕위를 내려온다. 가방을 들고 요양원을 향한다. 택시를 잡고. 가방을 들고 지안은 따라 나온다. 바이올린 소리가 고즈넉하고 매정하게 흐느끼고, 느린 건반에 눌리는 피아노 소리.
할머니는 말 못하는 벙어리, 눈빛.
차를 타고 요양원을 향한다. 앞자리에 앉은 동훈도 침묵한다. 할머니도. 지안도.
요양원에 도착하고,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운다.
여기 수화할줄 아는 사람 따로 없어요. 간호사다.
1949년생 할머니.
동훈은 봉지에 과자등 먹거리를 사서 요양원 수납함에 넣는다. 할머니는 동훈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무엇인가를 쓴다.
내가 이제 마음이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심이 되요. 지안이 곁에 선생님같이 좋은 분이....
할머니는 동훈의 손을 붙잡고 쓰다듬는다. 할머니 딴에서 얼마나 마음이 불안했을까. 지안은 문뒤에 서 있다. 아마 그 모습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할머니랑 이별할 때가 온 것인지 모른다.
살아가는 모습이 어떤가. 우리 모습이 다 그러고 그런 안쓰럽고 마음 찡하고, 짠하고, 애잔함으로 눈물이 나는 듯 하다. 요양원을 뒤로한채 동훈은 길을 걷고 지안이 뒷따른다. 길목은 시골길이다. 둘이서 갈대밭 사이길은 길을 둘이서 걷는다.
세상은 홀로 살아간다. 하지만 모르면 그 만큼 고생하는 것이다. 상속을 포기하는 법도 몰랐고, 무작정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광일에게 무작정 당했고, 주조를 따로하면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수 있다는 사싷도 몰랐다. 동훈은 마치 지안의 보호자가 되어 준 것처럼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그녀를 지탱한다. 남여가 아니라 그냥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동훈은 어떻게든 섬씽이나 만드려 보려는 사람이 아니라 21살,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듯한 지안. 그러나 미처 모르는 것이 많은 지안을 돕는다. 어쩌면 이 정도라면 지안도 이 사람을 남자로 볼만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인간애와 풋풋한 정으로 펼쳐진다. 가족같은 그런 염려와 걱정, 그리고 앞날을 근심해주고 염려해주는 그런 차원이다. 작가는 이런 점을 이성간의 사랑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 듯 하다.
이름 대로 살아.
좋은 이름놓아두고.
왜 이렇게 빨리 걸어요? 부끄러워서 그런가.
둘은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에 별도의 좌석에서 침묵하며 간다. 계절이 찻장 밖으로 펼쳐진다.
와 나한테 말 안했어?
도준영에게 되물었다. 강윤희는 지안을 통해서 자신의 남편이 도준영과 바람피운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말 안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강윤희는 남편에게 자신이 쏘아붙히고, 함부로 막말하고 막대했던 때를 회상하며 후회한다.
Monologue
인간은 후회한다. 제일 쉬운 일이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택을 해야 한다. 뭐든. 선택에 있어서 어떤 것이 옳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선택은 그 누구의 몫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것이다. 무작정 연기할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그 시간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
도준영은 지안에게 동훈을 어떻게든 내쫓을 계약으로 1천만원을 건냈었다. 준영도 이제는 뾰족한 방법은 없고, 지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