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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eaky Doors n Steve Oct 16. 2020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이 바뀌었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우리 회사에 노조가 생기면, 그 날로 직장 폐쇄하고 사업 접을 겁니다.” 중소기업 대표인 A는 전직원 회의에서 자신의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을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 제각기 살아 나갈 방도를 꾀함)의 생존 이슈가 더 중요했던 중소기업 직원들에게 노조는 사실 언감생심(焉敢生心 : 감히 바랄 수도 없음)이었지만…  십 수년이 지난 과거 이야기입니다.  


   “OO의 노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 앞으로는 무노조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어느 날, 82년의 역사를 가진 글로벌 기업의 CEO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지만, 중요한 전환점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조직은 유기체입니다. 유기체는 끊임없이 새로운 에너지가 유입되어야 생존 혹은 성장이 가능합니다. 환경과 상황의 변화는 새로운 유입을 막을 수 없는데 기존의 판단 결정 기준만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현명한 의사결정은 아닙니다. 


 더불어 변화의 속도가 예상되던 수준을 능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흐름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가치관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면서 큰 문제시되지 않던 것들도, 인권 개념에 대한 성장, 미디어의 발전으로 실시간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우리 사회의 숨겨진 모습을 표면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때는 맞았나? (Right Then?)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그때가 언제일까?’부터 정의가 내려져야 할 것입니다.  변화의 시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2009년 아이폰의 탄생을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2010년 즈음, 우리는 조직의 리더였을 수도 있고, 사회에 막 진출한 초년생 혹은 학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2010년 이전에 조직에 유입된 사람들을 PC 세대라고 부른다면, 2010년 이후에 조직에 유입되고 있는 사람들은 포스트 PC 세대, 모바일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 Z세대 등 약 10년을 주기로 새로운 세대 구분 개념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지금 문장에서 ‘그때’ 란 ‘Ubiquitous’라는 개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2010년 전후의 시간으로 조작적 정의를 내려보기로 합니다. 아직 Z세대는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는 않으므로 조직의 의사결정에서는 잠깐 논외로 합니다. 


출처 : pixabay 무료 사진 (www.pixabay.com)


  밀레니얼 세대가 조직에 유입되기 전인 2010년 이전에는 386세대가 팀장급 등 선배, X세대는 조직의 일원으로 조직에 적응하면서 자리를 잡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의사결정은 아직도 상당히 수직적인 시스템과 체계였습니다. 학교나 군대에서 받은 구타 흔적이 기억 언저리 세포에 남아 있었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세대들로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역사와 발전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할 것을 다짐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아마도 이 때 학교를 다니신 분들은 1년에 100번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직간접으로 접하면서 성장했을 겁니다. 


   1972년부터 전국에 확대 시행된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의 전제이자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는 비판을 계속 받았습니다. 즉 권력의 주체를 국민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하여, 복종의 대상으로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2007년 7월 개정된 현행 맹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즉 밀레니얼과 이전 세대는 인풋부터 차이가 납니다. 당연히 아웃풋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때는 맞았나?’ 그때도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상당한 부분을 단지 침묵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모두들 알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튀어나온 못처럼 망치로 두들겨 맞을 것이고, 상당한 어려움의 시간 뒤에는 결국 조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따라서 침묵하는 다수에게 ‘왜 가만있냐’고 묻기는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과 생활의 문제가 먼저이고, 그 대답은 정의의 문제라기보다는 힘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틀리나? (Wrong Now?)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학습받은 세대들이 사회 조직에 유입되고 그 수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반문하기 시작합니다. 


이 결정은 자유롭고 정의로운가?  


   회사의 방향이나 전략을 논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부터, 퇴근시간이나, 사내 복장 규범, 회식, 일과 헌신, 업무수행 등의 일상적인 결정사항까지 기존의 세대가 가지고 있던 판단기준과는 상당히 다른 기준이 추가된 것입니다. 


  어느 조직 못지않게 매출과 수익이 중요한 조직일지라도 내외부의 결정사항이 조직원의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된 사회정의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거침없이 비판받아서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조직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과거의 결정이 지금의 다원화된 기준하에서 틀린 결정사항인가? 


   그러나 가치 판단의 결과가 맞다, 틀리다의 양극단으로 흐르는 것은 문제 해결 상황에서의 갈등을 더욱 크게 만들 뿐입니다.  다양한 경영전략의 이슈들과 마찬가지로 리더십이나 의사결정의 이론이 정교해지고 있지만, 따라서 오히려 현장에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이론이나 사상이 먼저 정리되어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리더나 경영자의 성공 노하우가 이론에 반영되는 소위 ‘뒷북치기’가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조직은 이런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맞고 리더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훨씬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보다 먼저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서로 전혀 다르다'는 점에 대한 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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