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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Nov 03. 2023

전동킥보드 탔다가 검찰에 출두한 중학생 녀석

요새 참 전동킥보드를 많이 타는 아이들이 늘었다.

가끔 두 명씩 타고 쌩- 하고 지나가면 위협을 느낄 때가 있다.


중학생 소년이 면허도 없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가다가 행인을 치었다.

할아버지였던 그 행인은 꽤나 크게 다쳤고, 합의금으로 5천만 원을 요구했다.

소년의 집이 잘 사는 집이고 더구나 아이의 미래가 달려있기에 들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 억울하기에 더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

합의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리다고 봐줄 수는 없는 노릇.


소년범은 기본적으로 벌금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법에서는 전제한다. 벌금 처분을 해도 벌금을 내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본인의 행동에 대해 사회적인 약속에 때라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소년들에게는 교육을 전제로 기소유예(죄는 있지만 처벌은 잠시 유예하는)라는 교육조건부 기소유예가 있다.

다만, 이 교육에 관하여는 당사자와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계장님이 부모에게 전화를 하여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에 대해 설명했다.

다행히 흔히들 말하는 '빨간 줄'은 그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그날 학원을 가야 하는데..."라고 어머니가 걱정을 했다.

"교육에 동의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도 있어요."

계장님이 엄포를 놓았다.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생각을 하더니 동의를 했고, 동의는 직접 본인이 와서 해야 하기 때문에 검찰청으로 소환이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죄지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나타났다.

어린 아들은 멀뚱멀뚱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앉았다.

계장님이 물었다.

"아버님, 직업이 뭐예요? 사는 곳은 요? 자가인가요?"

"네, 회계사입니다" 집도 흔히들 말하는 강남 아파트 자가였다.(동의를 받으려면 이러한 생활환경 조사가 필수이다. 왜인지는 모르나.)

"교육은 3~5일 받아야 합니다."

"아휴... 그렇게나 길게요?"


그것을 들은 계장님이 한창 호통을 쳤다. 아버지와 아들을 혼낸다.

"아니, 아이한테 중요한 게 학원입니까? 자기 일에 책임지는 것이죠"

피해자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가 났을 때도 ‘저 학원 가야 하는데요’하면서 자리를 뜨려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학원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부모가, 세상이 그렇게 가르친다.


우리 방은 역할이 나눠져 있다. 계장님이 호통을 치고 넘겨주면 나는 부드럽게 감싼다.

잘 맞는 한 팀이다.


내가 웃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탔어?"

"그냥 편리해서요."

"면허 필요한지 알았어? 도로로만 다녀야 되는 건?"

"몰랐어요..."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해요. 세상일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순간 놀라서 아이를 쳐다봤다.

와! 아이들은 정말 빨리 깨닫는구나

"그래 그거야. 그거 기억하고 사회 나가자 우리.

너 세상 나가잖아? 아무도 안 가르쳐줘. 야! 킥보드 편하니까 같이 타자. 법좀 어기면 어때? 우리한텐 그런 일 안 생겨~ 이러지?"

"네 맞아요. 그랬어요."

"근데 그런 일 생겨 안 생겨?"

"생겨요..."

"잘 아네. 그래. 어떤 기분이야? 너한테 그냥 최악의 일이 생긴 거야?"

그러자 고개 숙이던 아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요. 최악의 일이 아니에요. 피해자 아줌마한테 너무 미안한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알 것 같아요."


억울해하던 아이가 미안하다고 한다. 다신 그런 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자 아버지도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부모도 자신의 아이한테 배워나가는 것이다.


이런 게 교육 아닐까?

학원을 가는 게 중요할까? 그저 아깝고 소중하다고 감싸기만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농사를 지을 때도 씨앗을 뿌리는 것은 나지만,

햇빛과 바람, 무더운 여름과 강한 비를 견뎌내는 것은 누구일까?

마침내 꽃 피우는 것은 누구일까?


그 녀석에게 나도 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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