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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Jun 23. 2024

미안해 널 미워해

나의 연약함에게

"에잇, 약해빠져서는... 쟤를 뭣에 쓰려나?"

"약육강식의 세계야, 약한 모습 보이면 잡아먹히는 거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말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함'을 경계하고, 때로는 경멸한다.


교수에게 갖은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을 당한 대학원생을 피해자로 소환해 조사했다.

교수는 그에게 병신아, 네가 이것밖에 안되니까 내가 그러는 거야. 데리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며 매일 그에게 가혹한 일을 시키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보다 못한 가족이 피해신고를 했고, 상해와 모욕 등으로 사건화가 되었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피해자는 대답했다.

"제가 학벌도 안 좋고 머리 나쁜 무능아라서 그래요..."


순간 너무나 놀랍고 마음이 아팠다.

전날 조사했던 가정폭력 피해자도 똑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제가 여자로 태어나 약해빠져서 그래요. 아이에게 줄 용돈도 못 벌고...'


두 번째 화살

피해자들이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신체의 남은 상처? 경제적인 손해? 아니다. 마음의 상처가 가장 크고 깊다.

그 마음의 상처는 어디에서 올까?

교수에 대한, 남편에 대한, 가해자에 대한 화와 분노? 아니, 아니다.

'약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후회가 가장 크다.


신기하게도 피해자들은 늘 똑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그때 좀 더 대항을 했었더라면...'

'내가 사회적 지휘가 좀 더 높았더라면...'

'내가 남자였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나약하고 무서워 떨고 있었던 자기 자신에게 또 화를 낸다. 그 상처는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사회에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다시 설 수 있는 작은 힘조차 다시 부정한다.

연약함, 그 아름다움

우리 각자 내가 누군가에게 '당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약하고, 한심하고, 볼품없게 느껴지던 순간들... 

나도 늘 '아 그때, 그 새끼한테 너나 잘해!라고 한마디 할걸..'이런 비슷한 상상복수를 하곤 한다.

그럼 그때로 돌아가 보자.

정말, 다른 선택을 할까?


아니, 또 그럴 것이다.

또다시 우리에게 약함이라는 '축복'이 올 것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착각이다.

오히려 생물학적으로 강한 종은 높은 확률로 도태되고, 환경에 맞게 때론 몸을 숨기고 잘 적응한 종들이 더 오래 살아남았다. 강한 것은 공격받고 약한 것은 도움을 받는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약함을 선택한다.

우리는 한번 데인 불이 다가오면 손을 피한다.

본능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생존을 위해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늘 어느 한쪽만 찬양한다. 성공은 취하고 실패는 버린다. 안정은 취하고 불안은 버린다. 관용은 취하고 복수는 버린다. 버려지고 외면당한 연약함은 어느 날 불쑥 더 크게 올라온다. 자기도 봐달라고. 그땐 더 감당하기 어렵다.


아가야, 너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피해자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저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라고 하는 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섣불리 도망이 아닌, 결투를 선택했다면

더 크게 다쳤을 수도 있고,

직업을 잃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거나,

사회적 평판이 나락으로 갈 수 있다.

더 심하게 피해자의 위치가 아닌 가해지의 위치로 뒤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현명하게 지는 것을, 도망치는 것을, 피하는 것을 선택한다.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할 필요 없다.

강한 나에게 말해줘야 한다.

'우리 낄끼빠빠 하자'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지자)


그리고 많이 토닥여주자.

연약한 나에게 고맙다고.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그럼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래, 내가 언제나 힘이 되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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