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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Jan 01. 2022

엄마, 담엔 나랑 친구로 태어날래?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나도 자식은 처음이라.

추천곡.

엄마를 조금만 이해해 줄래? Adele - Easy On Me


나는 누가 "너, 엄마 아빠처럼 살래?"라고 물어본다면, "절대 싫다"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과 똑같아지는 나를 보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을 한 번 더 마주하기로 하고 쉽지 않은 글을 쓴다.


어머니는 강원도 시골에서 농부의 7번째 막내 늦둥이로 태어났고, 공부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학교를 보내지 않으려는 할아버지에게 반항하여 기차가 오는데도 죽겠다고 기찻길로 뛰어든 것은 아직도 가끔 동네분들이 이야기를 하신다고 한다. 그것을 본 둘째 외삼촌이 학비를 대주어 엄마는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이후로 엄마는 이불만 들고 서울을 가서 공부하겠다고 혼자 돈을 벌었다. 그리고 산부인과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시피 하다 도망친 일이나 온갖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으셨는데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심지가 강한 사람이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날의 엄마.


아빠는 부잣집의 막내 늦둥이로 태어났다. 그런데 중학교 때 할아버지가 동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건강이 악화되어 일찍 돌아가시고부터는 참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아빠는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에 어떻게 하면 돈을 벌지 늘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성실하신 분이다. 제대로 쉬는 것을 본적이 없다.

두 분 다 며느리가 아이를 가진 시기에 태어나 부끄러웠고, 원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보다 못한 형제들이 젖동냥을 해서 키웠다고 한다.




그런 두 분의 환경 때문인지, 엄마는 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아빠는 살아남아야 된다는 열망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늘 성실했다. 늘 각자 자기의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굉장히 말을 잘 듣는 아이 었는데, 대학 입학과 동시에 뒤늦은 사춘기가 왔다.

18살에 부모님과 떨어져 15년간 혼자 살면서, 나는 그런 부모님에게 내가 불만이 굉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자신이 못 이룬 꿈을 나를 통해 이루려 했던 사람, 아빠는 오로지 일만 생각하고 술 좋아하는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립한 이후로는 가족과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가족에게 그러한 '거리두기' 시간들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나는 고시공부를 시작했고, 4년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밤까지 공부하는 인고의 삶을 반복했다.

그때의 나는 살면서 가장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창문만 보면 뛰어내릴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창문 없는 집에서 공부했다. 그렇게 3년이 채워질 때 즈음 팽팽하던 실이 끊어지는 일이 생긴다. 제일 믿었던 동기가 시험과 관련된 일로 나를 배신하고, 건강도 악화된다.


나는 죽을 것 같이 힘들어져서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는다. 그리고 부모님께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돌아오는 대답은 이거였다.

'더 버텨라.'

나는 무언가 '핑'하는 느낌과 함께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졌다. 엄마는 서러움에 숨을 못 쉬어서 119까지 불렀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더욱 가족과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가족은 내가 돌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도 일 년을 더 '버틴' 나는, 우여곡절 끝에 합격을 하고 검사가 된다.

살면서 그렇게 기쁜 순간이 없었다. 엄마는 소식을 듣고 수화기를 붙잡고 한참 우셨다.



그렇지만 일을 하면서 나는 늘 너무나 외로웠다. 그리고 내가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들이 결국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부모님을 대하듯 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를 낳은 나이가 될 때 즈음, 내가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점점 내가 닮아가는 것이 보였다.

바보 같고 지겹던 그 모습들을...




그 이후로 나는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하고, 자주 연락을 드렸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울면서 사과를 했다. "되돌아보면, 엄마가 내 상처를 덮기 위해 너를 너무 괴롭힌 것 같아, 미안해"

나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가 그 작고 여린 것을 안아 들었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최근에는 아빠와 정말 오랜만에 대화란 것을 했다.

나는 아빠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아빠가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서 바보같이 사는 것 같아서 싫었어."

아빠는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빠한테는 그래도 돼. 아빠는 괜찮아."

아빠가 불쌍했다.

몸만 커버린 한 소년같이 보였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했지만, 존경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나 존경한다. 이 세상 그 어떤 누구보다 나는 부모님이 존경스럽고 닮아가고 싶다.


아빠는 그가 경험한 것처럼 가족을 굶게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엄마는 내가 본인처럼 교육받지 못해 무시당하지 않도록 애썼다.

두 분 다 정말 대단하다. 아버지는 일찍 아버지를 보내고 빚더미에 있었음에도 지금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고, 어머니는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교육을 받지 못하는 환경이었음에도 딸을 검사로 키웠다.


그렇게 부모님을 인정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예의를 차리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

내가 겪은 고통을 남은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마음.


그 마음은,

가난한 피의자를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했던 나의 따뜻함으로 나타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나라도 더 해보려는 내 욕심으로 나타난다.


그런 따뜻함이 없었다면, 나는 이다지도 차가운 검찰청에서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부모님과의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 늦게 알아서 후회되기도 하고,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부모님과 친구로 태어나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든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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