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검사가 되셨어요?
나 : 저는 흔히들 생각하듯 ‘정의’를 구현하려고 검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대부분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정의’라는 가치에 관심이 많다.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은 부모님께 찾아와
“이 집 딸내미가 또 골목에서 동네 남자애들을 호되게 혼내고 있드라고오~”라는 말들을 많이들 하셨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잘못이 없는 친구들을 혼내는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께 겁 없이 대들다 대신 흠씬 두들겨 맞아 한 달을 절뚝거리기도 했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할머니에게 욕을 하는 아저씨에게 화를 내다 봉변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후회하지 않았고, 그것이 ‘정의’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 호전적이고 강직한 성격은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검사라는 꿈을 품게 했다.
하지만 이런 ‘정의’라는 수면 아래에는 사실 극심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인가, 하굣길에 매일 과자를 사러 가는 슈퍼가 있었다. 늘 무뚝뚝하던 주인아저씨가 그날따라 친절하게 웃으며 '이리 오라'고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옷이 튀어나왔다며 바지 안으로 자신의 두꺼운 손을 집어넣었다. 어린 나는 그때 아저씨의 행동에 어리둥절했고, 내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굳은 얼굴로 집으로 뛰어왔다. 그곳에 다시 가기가 무서웠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것이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명 바바리맨도 많이 맞닥뜨렸고, 남자 선생님으로부터도 불쾌한 경험을 겪었다.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내 안에 ‘여자로서의 불안’이 자라났다. 여성으로서의 나는 끊임없이 외부의 위협을 받았고, 그럼에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신체적, 사회적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나에게는 나를 도와줄 힘이 필요했다. 나는 약한 여성으로 계속해서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항상 밝고 어른스러운 여자아이였다. 어느 날 친구가 수줍게 '내일 우리 집에 놀러 오라'라고 초대를 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일이 생겨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친구가 얼굴에 심하게 멍이 들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그 친구는 갑자기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미안함에 집으로 한번 더 초대해달라고 계속 얘기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나도 그 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이 생겨 서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몇 달이 지나 갑자기 친구가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되었고, 우리는 뒤늦게 아버지에게 말로 다하지 못할 심한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휩싸였다. 그날 친구 집에 가지 않은 나를, 그녀의 멍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은 나를, 그리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나를 심하게 자책했다. 악몽 같은 집에 어떤 마음으로 용기 내서 나를 초대한 것일까... 지금도 이 글을 쓰며 그 친구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 자신조차 지킬 힘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불안은 커졌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도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
나는 어린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파렴치한 놈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고, 나와 그리고 내 주변 사람을 지키고 싶었다. 운동을 해서 신체적 힘을 키우기에는 현실적으로 나의 체력은 복치 중에 개복치였다. 그것이 안된다면 간접적으로 권력이라는 방패를 가져야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적들을 한 번에 다 끝장내버리는 원더우먼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의 목표는 오로지 '검사가 되는 것'이었고 미치도록 공부에 매진했다.
시험만을 위한 공부는 정말 힘든 과정이다. 독서실이 1층에 있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다 소음으로 괴로워서 학교 근처에서 젤 저렴한 판자촌에 집을 얻어 하루 한 끼를 먹으며 공부했고,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책상에 앉아 눈 감을 때까지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는 생활을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가슴이 죄어오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일으킨 것 또한 ‘사랑’도 ‘감사’도 아닌 바로 ‘불안’이었다.
사람들은 불안을 두려워한다. 아마도 불안을 느낄 때의 신체 감각이 불쾌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시험을 볼 때 우리는 어땠는가.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힌다.
그리고 사람들은 편안함을 좋아한다. 편안할 때의 감각이 좋기 때문이다. 푹신한 침대에 눕는 감각을 떠올려보라.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산다. 불안은 없애려 하면 할수록 더 들러붙는다는 사실. 그만큼 부정적 감정은 강한 감정이다. 우리가 좋은 일은 금세 잊으면서도 나쁜 일은 계속 생각나는 이유도 그렇다. 강한 감정은 강한 에너지를 가진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
‘내가 만약 나약한 나로 계속 지낸다면...?’
‘내가 아무런 힘도 없는 마냥 어린 여성이라면...?’
‘내가 이대로 고통받는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면...?’
그렇다. 나는 약한 여자로서 머물러있는 내가 불안했다. 그래서 검사가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주변엔 정말 멋있는 이유로 이 직업을 희망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찌질한 이유로 검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검사가 된 지금은 불안하지 않으시겠네요?
나 : 아니요, 여전히 불안합니다.
성범죄를 다룰 때마다 반대로 혹시 내가 억울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내가 쏟아지는 사건의 무게에 허덕이다 중요한 것을 지나칠까 봐 불안하다. 내 인생이 일만 하다 끝나는 것은 아닌지 무섭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불안을 해소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한 생명체인 우리는 끊임없이 생존의 불안에 시달린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것이 우리를 생존하게 만든다.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자기 삶의 수준을 개선하려는 기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피할 수 없는 불안이란 것과 함께 가야 하는 운명이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중에서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행동이다. 불안의 에너지는 우리가 불안해하기만 하면 방해물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사용하게 되면 인생을 바꾸는 힘이 된다.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일만 하다 끝나면 어떠 카지 인생’이라는 불안 덕분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이 가장 불안한가? 사랑? 인정이나 돈? 건강? 그 두려움의 에너지를 가지고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작은 소소한 행동부터 해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