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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Nov 23. 2020

여자라서 미안합니다

나는 내 동기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린 편이다. 

어린 여자가 앉아있으니 가끔 피의자들 중에는 나를 검사가 아닌 직원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책상에 명패가 있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를 보면 책상 앞에 '검사 황시목'이라고 써진 명패를 놓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명패를 놓지 않는다.

이유는 인권위 때문이다. 요샌 인권을 이유로 수갑을 풀고 조사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 번은 두 손이 자유로웠던 살인 혐의의 조폭 피의자가 조사 도중 흥분하여 날뛴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책상 위 모든 것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책상 앞에는 명패는 물론 커터칼 등이나 뾰족한 것들은 절대 놓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한다.





내가 초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피의자 박 씨는 여비서가 결재를 올릴 때마다 엉덩이를 만졌고, 강제추행 혐의로 우리 방(검사실을 칭함)으로 배당이 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피해 여성이 친구의 조언으로 캠을 숨기고 결재를 들어가 추행당하는 동영상까지 찍었음에도 그는 혐의를 부인했다. 그 비서는 피해사실을 회사 고충처리센터에 얘기했다는 이유로 '꽃뱀'으로 몰리고 전근을 가는 등 오히려 회사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법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고소를 하였다.


피해를 입었음에도 닥쳐올 불안에 입을 다무는 경우가 다반사다


 조사 첫날, 그는 검사실에 들어서자마자 초입에 보이는 나를 향해 “아가씨, 여기 커피 한잔.”을 외치며 계장님(수사 업무를 보는 검찰 수사관으로 7급부터 계장이 됨)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희극 같은 광경에 헛웃음이 났다.

 

당시 계장님은 나와 사이가 매우 좋았다. 보통 검사들은 일주일에 한 번 같은 방 전우들(실무관님, 계장님들)과 점심을 먹고 다른 요일에는 부검사들과 먹는다. 그럼에도 우리 방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맛집을 찾으러 함께 다녔다. 그런 계장님이었으니 ‘감히 우리 검사님에게!’란 표정으로 “어허!!”라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당시 나는 끓는 가슴을 한숨으로 내보낸 후, 일단 계장님께 수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애써 입고리를 올리며 “따뜻한 거죠?”라며 커피를 타다 주었다.

조사는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던 박 씨는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되자 소리치며 말했다.


“나는 그 x 건든 적도 없고, 그 여자가 꼬리 치다 안되니 돈 좀 받으려고 쇼하는 겁니다!”


뻔뻔하게 상대방 탓을 하는 피의자들을 보자면 분노가 인다. 그러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새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에 짠하기도 하다. 화 짠 화 짠.


여하튼 그는 계속해서 화를 내며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았고, 조사에 진전이 없으니 계장님이 말했다.

“1차 조사 끝났으니 검사님 앞으로 가세요”

“예? 검사님이요...?”

“예, 아까 커피타다준 분이요”    


박 씨는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붉어졌다가 하더니 ‘검사님인 줄 몰라뵀다’며 손에 쥔 땀을 바지춤에 닦았다.

사람은 상대에게, 특히 자신이 잘 보여야 된다고 생각한 상대에게 실례를 하면 크게 당황하고 한풀 꺾이기 마련.

그런 그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조금 다그치자 죄송하다며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커피값은 한 셈.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첫눈에도 화려한 젊은 미인인 오 씨는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 알게 된 돈 좀 있다는 회장님들에게 ‘이 지역은 반드시 개발된다’며 수억을 투자받고 날른 사기꾼이었다. 그녀는 한껏 풀메이크업(?)을 하고 새침한 표정으로 계장님 앞에 앉았다. 그런 그녀가 조사를 받게 되자 온몸을 떨며 처량하게 눈물을 뿌렸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회장님들이 돈을 주면서 좋은 곳이 있는데 중간다리 역할해보라고 해서 심부름했을 뿐이에요. 흑흑흑끕.” 


나는 그저 마스카라가 번지지 않게 우는 게 신기했다. 

우리 계장님은 온갖 험악한 범죄자들에게도 콧방귀를 뀌며 압박하는 토르 같은 전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성의 눈물에는 약한 로맨티시스트 기도 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계장님이 휴식을 외쳤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화장실에서 통화하는 그녀와 마주쳤다.


“아이 씨발, 당연히 잡아떼야지~, 눈물 흘리느라 개 힘들어. 영감탱이들 좋다고 할 땐 언제고, 꼬시느라 내가 들인 돈이 얼만데~” 


손을 씻던 나와 눈이 마주쳤으나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정말로 '위아래'로 눈동자가 굴러갔다) 개의치 않고 통화를 이어나갔다.    



"울지 마, 예리미~ 우리 오래가자!"


 

그렇게 다시 시작된 조사에서 계장님은 울고 있는 피의자에게 한숨을 쉬며 다음에 다시 가자며 말했다.


“오늘 조사는 끝났으니 일단 검사님 앞으로 가세요.”

“예? 검사님이요...?”

“네, 저기 앉아계신 분이요.”



영화 ‘타짜’의 정 마담 같았던 그녀는 저승사자를 본 표정으로 울음을 뚝 그쳤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여자가 자기 사건의 검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자신의 주된 무기가 무력화된 그녀는 전의를 상실하고 순순히 죄를 자백했다.    





가끔은 어린 외모의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불이익을 받기도 했고 열등감도 느끼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으면서 나에게는 시비를 거는 주차장 요원이나 경비 아저씨들을 보면 '내가 어리고 여자라 만만한가보다. 난 왜 이럴까.'라고 하면서 오히려 화를 당한 나를 자책했다.


그런 세상의 시선들은 나를 특이한 사람으로 본다.

여성이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험하고 무섭지 않냐는 말도 자주 듣는다. 

예전에 한창 소개팅을 할 때에도 '검사하시기엔 너무 여리여리 하신데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단골멘트로 들었다.


무섭다. 하지만 무서운 건 언제나 내가 아니라 마주한 상대방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한다. 법 앞에서 죄를 지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발가벗겨지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나의 위치가 싫지 않다. 상대의 경계를 늦추고 가면이 벗겨진 맨얼굴을 더 쉽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유의 여성성과 공감능력은 피의자나 피해자의 내면 더 깊은 곳까지 나를 안내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조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남 탓, 환경 탓을 하다 보면 우리는 늘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아프지만 걸을 수 있다.

우울하지만 떡볶이는 먹을 수 있다.

나를 찾는 곳은 없지만 쉴 곳은 있다.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혹은

내가 가지지 못해 다행인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오체불만족의 닉 부이치치 연사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외모나 인기,

학벌이나 직업에 연연하죠. 

그러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사람들은 나의 외모나 지성, 성공은 기억하지 않아요. 

내가 어떻게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기를 줬는지 기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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