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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Nov 23. 2020

내가 배운 것은 팔 할이 죄였다


사람은 항상 그때 당시에 최선의 선택을 한다.

범죄자도 마찬가지라고 하면 어떤 욕을 먹을지. 뭐 어쩔 수 없나. 법륜스님의 말대로 열의 둘셋은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싫어하니까.



나는 이제 7년 차 검사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 제목처럼

그때 내가 정의라고 믿은 것이 지금도 정의일까를 늘 생각한다.    


초임 시절 기록이 산처럼 쌓인 내 책상 앞에 앉은 모든 이들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였다. 아내를 죽이고, 어린아이를 강간하고, 평생 모은 할머니의 돈을 전화 한 통의 간교한 말로 앗아간 쓰레기들.

그 ‘악’한 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되거나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꼴을 보면 불을 뿜듯이 화가 났다.

지나가던 선배들이 ‘검사님 남자 친구는 진짜 무서워서 지리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진실의 방으로"



그런 내가 조사를 하면서 ‘안구에 습기 차면 안 돼!! 쪽팔리게!’라고 외치며 내적 갈등을 느끼게 한 피의자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레오를 만난 것은 2년 차에 막 접어들었을 때이다. 또래에 비해 더 어려 보였던 레오는 인터넷 물품사기 전과가 수개인 전형적인 중고 로운 평화 나라의 사기왕이었다. 나도 아이돌 가수 티켓 구매를 하려다 비슷한 일을 당할 뻔한 적이 있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오늘도 알차게 조지자’란 생각으로 그를 마주했다.   


중고로운 평화나라에서 산 파라솔~

  


보통 청소년 피의자들은 부모가 어떻게든 합의를 보려고 해서 구속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대부분 철없이 검찰청에 온 것 자체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레오는 얼핏 보기에는 순하고 겁에 질려있었으며, 삶에 찌들어있는 어른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죄를 자백하는 레오를 조사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는 방어적인 태도로 머뭇머뭇거렸다.

무서울 줄 알았던 검사가 웃으며 "너랑 비슷하네"라며 오레오를 건네주자 긴장이 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오가 기억하는 생애 첫 기억은 육체적 아픔이었다. 술 취한 아버지가 내리친 물건이 다섯 살의 여린 살을 파고든 날 느꼈던. 그리고 이후로도 아버지의 이유 없는 폭력은 계속되었다. 어린 시절엔 식비조차 가져오지 못해 점심시간마다 교실 밖을 나가는 비참한 나날들이 이어졌고, 영악한 아이들은 사랑받지 못한 채 가난의 냄새를 풍기는 친구를 가만두지 않았다.


매일 아버지를 죽이고 싶으나 어머니를 위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구타로 장애가 생긴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해서 아이를 키우려 했지만 자신의 약값을 대기에도 부족해 매일 이불속에서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는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절도, 폭력 전과가 생겼다.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이러다는 안 되겠다 싶어 소년원에서 익힌 제빵기술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서 돈이 없어졌는데 의심의 타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전과가 있는 레오이었고, 쫓겨나듯 일을 그만두었다. 그 이후 어딜 가든 기회를 주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친구가 인터넷 중고나라에서 거짓말을 하여 돈을 버는 법을 알려줬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레오는 그때, 그날 최선의 선택을 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서 세상의 기준에 맞게 올바르고 안전한 선택만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범죄는 어쩌면 그 사람의 욕구, 감정, 상황에 따라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선택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날 나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연민의 눈물을 흘렸다.    


레오는 조사 이후 나에게 신고되지 않았던 범행까지 고백했고, 나는 그가 편취한 금액을 모두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후 나는 반가운 편지를 받았다.

레오로부터 온 편지였다.     



“지금 검정고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도 몰랐던 저의 아픈 얘기를 들어준 사람은 검사님이 처음이었습니다. 가장 두려운 사람이 저를 이해해준 경험은 오랜만에 느껴본 따뜻함이었습니다.”    


나 역시 답장을 보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너의 책임을 다하고,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는 나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기도 했고, 내가 타청으로 발령이 나며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죽은시인의 사회 '키링' 선생님은 말했다. 카르페디엠!

원래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힘을 일컫는 말로 ‘회복력’ 혹은 높이 되튀어 오르는 ‘탄력성’을 합친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있다. 1950년대 미국 카우아이 섬의 사람들이 왜 불행한지에 대해 유명 학자들이 그곳 신생아 900명을 대상으로 50년간 연구한 결과로써 나오게 된 용어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들처럼 범죄자, 마약(뽕) 쟁이, 노숙인 등이 되었으나 놀랍게도 30%의 아이들은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서 훌륭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요인이 ‘어떤 경우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어른이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청소년 범죄자들에게는 그러한 어른이 주변에 없다. 따라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향의 올바른 선택지 자체가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선생님이 되었든, 옆집 할머니가 되었든 그들 곁에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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