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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Jan 02. 2024

법이 흘리는 눈물

예전에는 WHY?에 대한 질문 없이 WHAT?과 HOW?에 대한 질문만 끊임없이 했었다.

그러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고, 삶이 지루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이 일을 왜 해? 왜 하필 형사사건이야?

내 답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싶다."

이다.

이런 식으로 질문하다 보면 좀 더 사건 당사자들의 상황을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살펴보게 된다.

예를 들어 '사기사건'을 왜 하냐고 묻는다면, 결국은 피해자의 피해회복이다.


최근 안타까운 사건이 왔다.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기망행위와 처분행위, 고의 등 구성요건요소가 갖추어져야 하고,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사기죄 인정이 까다롭다.

즉, 저 여자한테 속아서 돈을 못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사기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70대 할머니는 피의자로부터 노후자금을 탈탈 털어 땅을 샀다. 그 땅은 개발이 되지 않는 임야였음에도 부동산 마케터 생활만 10년간 한 피의자의 말에 땅값이 오른다고 생각하고 20배를 넘게 주고 산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땅이 개발이 되지 않는 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끔 사람은 이렇게 비이성적 판단을 한다.

할머니가 그런 사정을 이미 '알고도 샀기에' 피의자는 형사적으로는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의적으로는 소위 말하는 '나쁜 X'이었기에 너무나 답답하고 사이다가 필요했다. 내 필명처럼!

그 과정에서 나는 왜 이 일을 하지?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내 역할이 무엇이지?

고심 끝에 결국 양당사자들 설득해서 합의기간을 부여했다.

3개월이 넘는 장기사건이 돼서 차장검사의 쪼임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대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결국 피의자가 할머니에게 피해액의 2/3를 회복해 주고 합의를 했다.

피의자 스스로도 도의적 책임을 질 수 있었고, 할머니도 노후자금을 회복할 수 있었다.


또 이런 사건도 있다.

자꾸 남자의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년이 있다.

나이 많은 아내가 그에게 다가가 '학생,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라고 하자, 그 청년이 자신의 아내에게 '씹구멍, 쌍년, 뒤질래'라며 심한 욕설을 한다. 이에 남자는 화가 나  그 청년의 멱살을 잡고 밀쳤고, 넘어진 그 청년이 남자에게 더 큰 반격을 가한다. 그리고 그 청년이 그 남자를 폭행으로 고소했다.

또 고구마다.


일을 왜 하는가? 법은 폭행에 해당하지만,  그 남자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이 일을 하는 나의 가치에 맞는 것일까?

결국 그 남자에 대해서는 기소유예(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제도)를 했다.

법의 눈물이라는 말이 예전에는 와닿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늘 일반적인 '상식'을 키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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