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을 토해내고 난 뒤 고요해저 본 적이 있는가.
예술가들은 많은 경우 화를 에너지로 쓴다.
박서보 화가가 그렇다. 그는 묘법으로 유명하다.
묘법은 선을 긋는 행위를 무한히 반복해야 완성된다. 그의 작업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수행한 노승과 같다.
그의 아내가 작업하는 모습이 무섭다고 할 정도로 타고나기를 지칠 줄 모르는 정신세계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 화를 다스리기 위해, 캔버스 위에 선을 긋고 자신을 비워낸다.
나는 원래 클래식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유명한 공연이라고 해서 가도 늘 잠이 들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최근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이끌림에 의해 임윤찬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었다.
18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저명한 쇼팽콩쿠르에 1위를 했다고 한다.
그의 연주를 보며 영화 소울에서 봤던 일부 장면이 떠올랐다. 끊임없이 선을 긋고, 있는 힘껏 건반을 누르며 그 행위와 하나가 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도 함께 공명한다.
콩쿠르 우승 인터뷰 영상이 떠 어떤 마음으로"일"을 한 것일지 궁금해 클릭했다.
놀랍게도 그가 가장 영감 받은 인물은 서양의 음악가도, 유명한 교수도 아닌 대가야의 악사인 가야금 연주자 우륵이라고 답했다.
"모든 울분을 다 토해낸 뒤에 갑자기 나타나는 우륵 선생의 가야금 뜯는 소리, 어떤 초월적 상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한마디에 몇천 년 전 우륵의 가야금 소리가 그의 라흐마니노프에서 재현된다.
모든 울분을 토해내며 건반을 치는 반동으로 의자에서 반쯤 일어설 듯 튕겨져 나가는 그의 모습에 내 마음도 같이 꿈틀거린다.
수천 시간 노력해서 탁월해지는 사람은 저런 모습이구나.
참 아름다운 존재구나. 그리고 나도 그런 존재로 태어났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먹고사는 행위에 의미를 담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하는 것이다.
'우승이 목표가 아니었고, 내 음악이 깊어지기 위함이었다.
그저 사람들에게 베토벤을 잘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의 수상소감이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범행의 동기에 이렇게 대답한다.
"검사님, 제가 순간의 감정때문에 일을 저질렀습니다."
마약 사건 재판을 하다보면 화가 많이 난다.
대부분 제보자도, 피고인도 뽕쟁이인데다가 거짓말이 습관화가 되어있다.
나는 재판에서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수사당시에 강압으로 거짓제보를 했다'는 증인에게
당장 증언 이후에 검찰청으로 와서 위증조사를 받으라고 부들거리며 화를 낸적이있다.
너무나도 후회되고 창피한 기억이다.
화를 타인을 터치하는데 쓰면 범죄자가 되고
캔버스를 터치하는데 쓰면 예술가가 된다.
나의 존재에 가까워지는 진정한 나 되어가는 길은 무엇일까?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날 수록 사건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이렇게 가끔 글을 쓰는 것 밖에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