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사이다 Nov 05. 2023

그 힘든 검사일을 대체 왜 하세요

친구들이나 모임을 하다 보면, 늘 일을 하다 오거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나의 얼굴을 보며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어?, 그냥 나와서 변호사 하면서 돈벌지"

최근 아이를 키우는 언니가 내 새끼가 판검사가 되면 좋긴 하겠지만,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서 또 막상 해보라고 하기가 저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또 묻는다.

"난 내 자식 못 시키겠어. 힘든 일인데 하게 된 이유가 뭐야?"


우리가 각자의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

형사사건은 자유와 규율 사이에 가르마를 타는 일이다.

예를 들어 명예훼손 사건을 하다 보면, 표현의 자유와 법적인 처벌 사이에서 길을 헤맬 때가 많다. 최근 위안부 관련 사건을 승계받아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제국의 위안부'를 쓴 저자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다. 위안부를 ‘성매매 집단’이라고 표현했음에도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러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것도 학문의 자유이기 때문에 처벌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정의일까.


사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이다.(아이러니하게도 규율, 규칙이 아니다)

초임검사 시절부터 차장님, 검사장님에게 ‘김검사는 참 자유로운 영혼이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물론 칭찬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주말에는 자유를 찾아 떠난다. 요가를 하고, 여행과 명상도 한다.


나의 직업은 표면적으로 자유와 거리가 멀다. 검사라는 직업은 일단 나 자신의 신체의 자유가 속박당한다. 매일 검찰청이라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12시간을 일을 하며 보낸다. 매일 허리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름에도. 그리고 타인의 자유를 속박한다.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죗값을 저울질하고, 그에 따라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게 경제적 자유든 신체적 자유든 말이다.


하루에 처리하는 일들


나는 늘 그 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과연 내 직업이 맞아떨어지는 것인가?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사직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 의문을 품던 중 연인과 정말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 이야기를 툭 했더니 그가 말했다.

“음, 내 생각은 좀 달라. 당신은 자유를 박탈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지켜주는 사람이지”

내가 왜 자유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일까.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사람의 죄를 대신 처리해 주는 것이잖아. 그 기회를 주는 것이고. 그건 엄청난 희생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야”


순간 눈물이 왈칵 났었다.

누군가 나의 일을 알아준 것 같았다.

검사는 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 기꺼이 책임질 수 있게 함으로써 자유를 찾을 수 있게 지켜주는 사람이구나.

내 직업에 대한 해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용서와는 다르다. 내가 감히 그 사람의 죄를 사하거나 용서받게 할 수는 없다.

죄를 지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의 탓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후회하고 그 억울함과 후회 속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대가를 지는 순간 그 사람은 반드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를 향해 내뱉는 것을 본다.

그럼으로써 피해자들도 피해의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순리 앞에 작아지고 자유로워진다.


아,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가 하는 일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때 사람은 토할 것 같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구나.

라고 느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인생은 해석이다.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일에서 어떻게 그 가치를 실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전 02화 직장 동료와의 행복한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