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기행#10
매년 이맘때면 도다리쑥국으로 유명한 통영의 분소식당을 찾는다. 싱싱한 도다리반마리와 방금 뜯어낸 어린 쑥 그리고 햇무우를 넣고 한소쿰 끓여낸 도다리쑥국은 봄향이 가득한 잊을 수 없는 맛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분소식당은 문을 닫은지 오래였다. 굳게 닫힌 문을 열어보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옆가게의 아주머니가 이젠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셨다. 얼마나 아쉬웠던지 가슴이 먹먹했다. 수년째 찾던 곳인데 무슨일인지 궁금했다. 오래된 것들이 오래도록 그자리를 지키고 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통영시 임내길 100에 위치한 황리공소는 통영에서 약 30분정도 거리에 있다. 1934년에 지어진 한옥식 건물이다. 88년정도 된 건물이니 100년을 바라보는 공소건물이다. 네비의 길안내에 따라 황리공소 뒷편에서 아래로 보는 좁은 도로로 들어와 차창너머 아래를 보았다. 공소처럼 보이는 건물은 보이질 않고 군데군데 빌라들이 들어서있었고 옛집들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도로변에 차를 새우고 네비에서 본 길을 따라 걸어들어갔다. 이제 봄의 초입이라 그런지 활짝 핀 매화꽃들이 보인다. 제법 많이 지어진 빌라들로 짐작컨데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산업시설이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오는 길에 봤던 큰 크레인탑들이 기억났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어렵지 않게 황리공소를 찾을 수 있었다. 황리공소가 있는 위치에서 아래쪽은 빌라들이 들어서있고, 위쪽은 흔히보는 시골집들이 평화롭게 세월을 지키고 서있었다. 황리공소를 알리는 입구표식이 없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칠뻔할 만큼 황리공소는 평범한 시골집처럼 보였다. 표식에는 설립일자가 한문으로 적혀있었다.
꽤나 너른 마당이다. 자갈이 깔린 마당이 깨끗하고 정갈하다. 본당 입구의 짙은 민트색 문과 흰 바탕의 벽에 오래묵은 목골이 조화롭다. 지붕은 민트색 스레트인데 아마도 기와를 걷어내고 가벼운 스레트지붕으로 교체한 것처럼 보였다. 한옥 건물의 지붕은 어디서나 세월과 중력을 견디기 힘들어 보인다. 기와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한눈에도 오래되어보이는 향나무 두그루 사이를 지나 본당의 문을 연다. 삐그덕. 세월의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몇차례 한옥공소를 본터라 이미 익숙해진 건물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옛날 그대로인지는 모르나 바닥이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5센티는 밑으로 꺼지는 듯했다. 늘 그렇듯 제대앞쪽에 자리를 잡고 묵상기도를 한다. 마음에 담아 두고있던 기도제목들을 털어놓고 성당의 최초와 그와 함께 살아왔던 신자들의 삶을 묵상했다. 황리공소은 처음부터 성당건물로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제대 쪽 장식에 소박하게나마 멋을 부렸다. 나무에 칠을 해서 벽에 덪대고 그위에 십자고상이 달려있었다. 그 외에는 어느 한옥공소나 비슷했다. 좌우를 가르는 나무기둥을 사이에 두고 남녀가 따로 구분되어 앉아 전례를 행했을 것이다.
오늘은 황리공소만 방문할 목적이었으므로 시간이 많았다. 공소안 회중석에 앉아 오랜 시간 머물고 싶었다. 아늑했다. 시골의 외가에 온 기분이라면 이상할 지는 모르겠지만 편하고 안락함마저 느껴졌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수십만명을 웃돈다.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이미 많은 확진자가 나와 격리와 치료에 힘든 생활을 한지도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간다. 언제쯤이면 이 모든 어려움들이 지나갈지 하느님만 아실 테지만 이 속에서 또한 훗날 우리가 기억해야할 교훈이 있을 테다. 근 한달만에 찾은 성당기행에 오랜만에 맛보는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전쟁터 같은 병원의 일상에 다시 돌아갈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