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기행 #21
12월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감포로 나서는 아침 공기가 차가워 옷깃을 더 여밉니다. 다행히 하늘은 맑아 저녁뉴스의 비 소식을 반신반의하며 출발합니다. 10시경 도착한 널찍한 감포공소 앞마당. 양남 성당처럼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감포항이 시린 하늘 아래 그림처럼 놓여 있습니다. 주차된 차가 몇 대 있어서 벌써 신자분들이 오셨구나 했는데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모동산과 바다를 보고 싶어 밖으로 나오니 나이 드신 사제 한분이 저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허연구 모이세 신부님입니다. 허 모이세 신부님은 89세의 은퇴한 노사제로 2021년부터 감포공소를 맡아 직접 미사를 집전하시고 지역 가톨릭 활성화에 크게 애쓰시는 분이십니다.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계시지만 90세 노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어디서 오신 분이냐고 물으시는 신부님의 다정한 질문에 혹시나 새 신자가 아닐까 하는 간절함 같은 것이 묻어납니다. 감포 공소는 무속신앙이 뿌리 깊은 바닷가라 전교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곳이라 합니다. 1980년 쯔음부터 이곳으로 이주한 소수의 신자가 가정 공소를 시작했고 신자수가 조금 늘어나 공소 부지를 매입하고 공소를 건립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15년이 지난 2005년에야 성당을 건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자수가 10여 명이었지만 자그만 어촌 마을에 신자수가 줄어 한때는 3~4명이 미사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 은퇴하였지만 공소 활성화에 남은 생을 헌신하시기로 한 모이세 신부께서 교구에 간청하여 지금까지 공소에 상주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포공소는 대구대교구 소속 양남성당의 관활 공소입니다. 하지만 들어오는 입구 공소를 알리는 커다란 이정표엔 감포성당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상주하시는 신부님이 계시니 성당이라고 불러도 크게 이상하진 않겠지만 공소라는 말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감포성당이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오늘 미사 시간에는 약 16명 정도의 신자분들이 미사참례를 하고 계셨습니다. 근 2년 정도의 시간에 신자수가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도시의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따뜻한 인사말. 다들 반갑게 맞아 주셨고 미사 시간에는 신자분들께 저희를 소개하여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성당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저희 소개에 더욱 반가워하시는 신자분들. 아무쪼록 감포 성당이 지역에 아름답고 선한 영향을 많이 끼쳐 작은 성당을 신자들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미사 시간 내내 간절함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감포 성당은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언덕 위에 위치합니다. 아마도 감포에선 제일 높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더 높은 곳에 사시는 신자의 집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제일 높은 곳은 아닌가 봅니다. 감포 성당의 조망은 그야말로 그림 같습니다. 늦가을이라 차가운 공기 탓에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하늘은 가느다란 경계선을 중심으로 각각 푸르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찰랑이는 바다에 뿌려진 햇살은 보석처럼 반짝거립니다.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오묘한 천지창조의 자연을 경외하게 됩니다.
마당 한쪽엔 바다를 품은 성모동산이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를 등에 지고 두 손을 살포시 모은 성모님의 상이 서로 배색이 되어 하늘에 떠있는 듯합니다. 겨울 초입이라 아름다운 꽃 장식은 없지만 봄엔 이 동산에 수많은 꽃들이 만발할 것을 상상하니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앞엔 의자도 있어서 자연 속에 기도처가 되어 간구하는 모든 기도제목들이 다 이루어질 듯한 믿음이 절로 생길 듯합니다.
조금씩 늘어나는 신자들. 90세의 노령에도 꿈을 꾸시고 꿈을 향해 남은 생을 헌신하시는 허 모이세 신부님. 이제 은퇴를 앞두고 꿈을 접어버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그 꿈을 위해 기도하시고 그 꿈이 이루어 지길 의심치 않으시는 신부님의 믿음의 기도가 성당을 더욱 은혜롭게 합니다. 내년 봄에도 이곳에 와서 봄날의 성당을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 소망하며 떠나왔습니다. 그때엔 더 많은 신자들이 미사 참례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