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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Aug 19. 2023

한 알의 밀알 예구공소

성당기행#36

공소는 가톨릭신앙의 시작이며 신앙공동체로서 살아있는 유기체 같은 곳입니다. 부서지고 허물어져 더 이상의 기능을 못하는 곳도 많지만 가꾸고 관리해서 지금도 공소예절과 미사가 이루어지는 곳들도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역사와 건축학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자체에서 문화재로 등록하는 곳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휴가를 맞아 거제도에 있는 성당과 공소를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중 특이하게도 새로 지은 공소인 예구공소를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전국 대부분의 공소는 오래된 옛집이나 지은 지 오래된 작은 서양식 건물들이 많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골지역이 많아 공소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멸실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소를 재건축하는 일이 무척 드문데 예구공소는 2011년에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어진 공소입니다. 바닷가 마을들이 그런 것처럼 약간은 가파른 언덕에 촘촘히 집들이 모여 있는 곳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천주교 예구공소가 보입니다. 어촌마을에 조금은 특이한 현대식 디자인의 건물이기도 하고 외관의 하얀색 벽과 물고기 모양의 창 때문에 한눈에 들어옵니다. 


좁은 골목을 따라 한 블록 올라가니 예구공소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보입니다. 예구공소의 성전은 순례객들이 많은지 입구에 순례스탬프가 있습니다. 성전 앞에는 윤형문 베드로 기념성전이라는 패가 걸려있습니다. 윤형문 베드로는 윤봉문요셉의 형입니다. 거제도는 1868년 병인박해를 피해 피난온 윤봉문 요셉 가족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1886년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신앙이 자유롭게 허용되었지만 윤봉문가족의 재산을 노린 지방관리가 사사로이 탄압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알 리 없는 윤봉문은 1888년 억울하게 고문받고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조선의 마지막 순교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인근에는 윤봉문 요셉성지가 조성되어 영혼의 안식을 기리며 그의 굽힐 줄 모르는 신앙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기념성전의 천정과 좌우 유리화는 익투스모양의 물고기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익투스는 헬라어로 물고기를 뜻하며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비밀스럽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두 개의 곡선을 겹쳐 만든 물고기 모양으로 나타냅니다. 예수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단어마다 한 글자씩 따서 익투스라고 발음합니다. 박해를 피해 거제도에 온 윤봉문 요셉가족이 은둔하며 이 지역 복음화에 힘쓴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구공소는 인근의 지세포성당의 관활 공소입니다. 아직도 예구마을 주민의 70%인 30세대가 가톨릭 신자이며 작은 마을이 하나의 신앙공동체로 매주일 8시 30분에 지세포성당의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작은 공소지만 매주 미사시간이 표시된 것을 보니 예구마을의 예구공소는 정말 은혜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입니다. 이곳 거제도에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지금처럼 수많은 열매를 맺은 것은 박해에도 사라지지 않는 구원의 역사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하느님의 역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요한의 복음서 12장 24절) 


성전을 나와 인근에 조성된 공곶이 해변길의 순례길도 잠깐 다녀왔습니다. 아름다운 숲길과 시원스러운 남해의 바다가 옥빛으로 넘실 대고 해안의 몽돌이 밟을 때마다 자그락거리며 순례길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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