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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큐비트 프로토콜] 17. 어둠

by 백기락


청계천에서 멀지 않은 스타벅스.
우연인 듯 보이지만, 그런 곳이 오히려 낫다.
사람이 많고, 발길이 잦고, 익숙한 소음이 가득한 공간.
정보를 주고받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는,
기억에 남지 않는 곳이다.

사장님은 늘 그랬듯, 먼저 와 있었다.
나는 그를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직책 때문만은 아니다.
3년 전, 이곳으로 부임했을 때부터 그랬다.
정부 쪽에서 내려온 인사라는 건 누구나 안다.
정치권과 무관할 리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일은,
알아야 할 것만 아는 쪽이 더 안전하다.

“강현씨.”

그는 여전히 이름만 불렀다.
습관일 수도 있고, 의도일 수도 있다.
나는 마주 앉으며, 그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커피잔을 손에 쥔 채, 시선을 창밖에 두었다.

“이건… 내가 예상했던 수준을 좀 넘는 것 같네.”

그 말에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럴수록 그 안의 무게는 컸다.

“이번 건,
백만 비트코인이 얽혀 있다.”

숫자 하나가, 공기의 밀도를 바꿨다.
시장가 기준으로 백조 원에 달하는 금액.
현실이라기보다는, 체계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수치다.

“그 사람이—백준기.
그가 그 안에 있다는 거야.”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내렸다.
백준기라는 이름이, 이 정도 크기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아직 확신이 없었다.

“비트코인이라는 게 말이지…”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처음엔 이상적인 구조였지만,
지금은 익명성과 탈중앙성을 무기로 삼은 또 다른 어둠의 화폐가 되어버렸지.
마약, 무기, 인신매매, 암시장—
그 모든 것의 자금 통로.
그게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자산이야.”

그의 말은 정보였다.
그리고 경고였다.

“문제는,
이번 건이 단순한 자금 이동이 아니라는 거야.
기존의 블록체인 탐색망에서는
이 비트코인의 흐름이 전혀 잡히지 않아.
중국이 뭔가 새로운 방식을 확보했거나,
이미 감춰진 구조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국내 연루 기업들—
그들 역시 의도적으로 이 흐름을 외부로부터 차단한 흔적이 보여.
정상적인 거래망이 아니라,
내부 회계에서도 지워진 회선처럼 움직이고 있어.
지금 미국도 움직이고 있고,
중국 내부조차 심상치 않아.
복수의 조직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그의 눈빛이 잠시 식었다.

“우린—이걸 놓치면 안 돼.”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말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긴장도 분명했다.

“일단, 백준기를 다시 찾아.
그가 지금 뭘 알고 있는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파악해야 해.
그 사람…
이 일의 출발점일 수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방어선이 될 수도 있어.”

그는 필요하다면 추가 인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직접 만나본 뒤 다시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게 맞다.
그는 이 흐름 안에선 너무 작고,
하지만 어쩌면 지금 가장 중요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일어났다.
다음 만남은 없는 게 좋다.
하지만—
왠지, 이 대화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6.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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