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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Oct 17. 2021

우리 집 옥수수는 엄마 아빠의 자부심

그 앞의 나


나의 엄마와 아빠는 농사꾼이다. 강원도 철원에서 논농사, 밭농사, 하우스까지 하신다. 논에서는 철원오대쌀을, 밭에서는 감자, 배추, 상추, 오이, 참외, 도라지, 단호박, 고구마 등을, 하우스에서는 옥수수, 고추 등을 수확한다. 친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으셨기에, 나는 어릴 때부터 제철의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다. 밥의 쌀과 잡곡도, 배추김치의 배추도, 들기름의 들깨도, 고춧가루의 고추도, 호박볶음 호박도, 감잣국의 감자, 간식으로 먹는 찐 옥수수와 고구마까지도 다 우리 집 꺼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쌀과 들기름, 고추장, 된장, 고구마 등의 꽤 여럿의 식재료를 사본적이 없다. 


수확하는 농작물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가끔씩은 우리 집 밭에 별게 다 있어서 놀랐때가 있다. 엄마는 허리 아프다면서, 해마다 밭에 키우는 농작물의 수를 늘리고 있다. 힘드니까 일을 그만 늘리라고 내가 말하면, 엄마는 말한다. 


"이렇게 심으면 마트 안 가도 먹을 게 많잖아! 없으면 또 아쉽다."


엄마는 밭에서 장을 본다. 그래서 그런지 해가 다르게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기면서도 밭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농작물 중에서 부모님이 단연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옥수수'이다. 찰옥수수도 다 똑같이 맛있는 건 아니란다. 우리 찰옥수수가 더 쫀득쫀득하고 달콤하다고 말이다. 파는 건 감미를 탄 물에 풍덩 넣어서 삶는 것이고, 우리 것은 물을 자작하게 해서 찌듯이 삶아도 고유의 단맛이 난다고 했다.


우리 집 찰옥수수


우리 찰옥수수가 다른 데서 파는 거보다 더 맛있다고, 외숙모와 이모에 이웃 아주머니까지 가져다가 먹는다. 나도 우리 찰옥수수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때는 다른 옥수수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도 우리 찰옥수수가 최고라고 생각하게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길거리에서 파는 찰옥수수를 사 먹어봤을 때다. 집에서 가져온 옥수수가 없었던 겨울이었다. 길거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처음으로 찰옥수수를 사봤다. 집에 와서 먹어보는데, 너무 딱딱하고 싱거웠다. 


두 번째는 유명한 초당 옥수수를 사 먹어봤을 때다. 한창 초당 옥수수가 나오던 초여름이었다. 샛노란 색깔이 예쁘고, 달콤하니 맛있다는 말에 홀려서 열 자루나 담긴 한 박스를 샀다. 잔뜩 기대해서 먹어봤는데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달콤하긴 하지만, 수분이 많고 아삭한 게 전혀 옥수수 같지 않았다. 옥수수는 찰옥수수처럼 쫀득한 게 좋다.


'이래서 우리 집 옥수수가 최고라고 했구나!'


남은 초당 옥수수를 처리하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쪄먹고, 구워 먹어 봐도 영 맛이 없었다. 그러다가 샐러드와 밥에 넣어 먹으니까 딱 좋았다. 콥 샐러드와 옥수수밥으로 초당 옥수수를 겨우 해치울 수 있었다.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옥수수를 사 먹은 얘기를 했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 집 옥수수가 최고라니깐!"


또 옥수수에 대한 엄마의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우리 옥수수를 누구에게 주더라도도 다 좋아하고 또 찾는다고. 이 집 저 집 자랑하는 옥수수였다. 엄마의 보람이 느껴졌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아빠의 자랑일 수 있을까?'


많은 농작물이 엄마 아빠의 손길로 자란다. 흙을 정리하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벌레가 생기면 약을 치고, 때에 맞춰서 비료를 준다. 행여나 비가 많이 와서 뿌리가 썩거나 떠내려갈까, 바람이 세게 불어서 부러지거나 쓰러질까, 해가 너무 뜨거워서 타들어갈까, 새나 산짐승이 와서 뜯어먹지는 않을까, 오랫동안 노심초사해서 키운다. 


'나도 그렇게 키웠겠지.'


언니들과 나도 수많은 손길로 자랐을 것이다. 작은 농작물도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데, 한 명의 아이에게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갈까? 네 명의 딸들에게 갔을 손길을, 나는 어림할 수가 없다. 

몇 개월이면 자라는 농작물은 그토록 부모님의 자부심이 된다. 나는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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