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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민 큐레이터 Oct 20. 2021

09 직지, 금빛 씨앗 (하)

알키미스트의 꿈 - 결국 전시도 여러 사람들이 꾸는 꿈

철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꿈. 그리스 시대의 알키미스트들이 꾸던 꿈이다.

그렇게 꿈을 향해 가는 그 길은 그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직지를 운명처럼 만난 뒤, 지금까지 직지를 발견하고 알리기 위해 그들이 봤던 시선으로 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상상하고, 나누고, ‘전시화’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새로운 하이브리드 씨앗이 나온다.



전시 준비 과정


그렇다면 2015년 12월에 방문 후. 5개월이 어떻게 흘렀을까?
아래 스케줄표를 보고 다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 4월 : 잠정적 참여작가 및 디자이너와 협의

- 5월 : 작가 창작 계획서, 참여작가 결정 및 규모 구체화, 영국 전시디자인 회사와 전시공간 구성 협력 체결

- 6월 : 사전 홍보 시작, 각 일간지/전문지 문화전문기자 접촉, 새롭게 제작되는 작품들, 주제별 글 작성 및 연결 (계속해서 주제를 쓰고 다듬는 과정이기도 하다)

- 7월 : 사전 기자간담회 (중앙지 문화기자, 지역지 문화기자, 시 출입 기자)

- 8월 : 작품 운송, 전시장 조성 (인테리어 등), 사전 기자간담회 (전문지 문화기자), 작품 설치 및 인스톨레이션 사진 홍보,  프레스콜 (전시장 방문 인솔), 도슨트 교육 (4회, 전시팀 진행)

- 9월 : 전시 개막, 전시 진행,  퍼포먼스 (4회), 특강 (9.8일), 영상 스크리닝 (윌리암 켄 트리지 작품 대공연장),



그렇게 3월부터 본격적으로 킬러 콘텐츠, 홍보 등에 대해 여러 각도로 연구하며 잠정적 참여 작가를 물색했다. 그리고 앵커 – 즉 닻처럼 관람객을 사로잡을 스타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그리고 산업 디자인, 서체 디자인, 패션디자인, 건축, 미디어, 프로젝션 매핑, 디엔에이 프린팅, 인터액티브 디자인, 퍼포먼스, 사진, 회화, 조소 등 수많은 각도에서 어떤 해석이 나올까 에 중점을 두었다. 그런 끝에 전시는 전병삼 총감독의 초대형 활자 문까지 포함해서 총 39명 작가로 이뤄져 있었다. 안상수 선생님의 <알파에서 히읗까지> 작품은 거울로 청주 예술의 전당 건물 입면에 설치되어 시작을 알리고, 윌리암 켄 트리지의 대형 오페라 작업이 전시 마지막을 의미했다.


안상수, 알파에서 히읗까지, 2013  - 그래픽으로 존재하던 작품이 건축적으로 재탄생했다.
윌리암 켄 트리지, Notes towards a Model Opera, 3개의 대형 프로젝션으로 되어있다.


전시 디자인을 맡은 에이브 로저스까지 하면 총 40팀이다. 작품 하나하나 너무 소중하고 큰 의미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론 아라드 '직지 파빌리온'에 대한 이야기만 펼쳐보고자 한다. 아래는 한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다.  


“론 아라드는 뉴욕의 유수의 미술관인 모던아트 미술관 (MoMA)에서 회고전에 초대받은 작가이자 디자이너로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브랜드입니다. 독일 출판사 타센 (Taschen) 이 뽑은 세계 3대 디자이너 중 하나. 어떻게 보면 삼엄한 미술관의 전시 주제가 쓰인 벽은 그가 거대한 붓으로 낙서를 했고 이채로 전시를 했습니다. 이는 그가 모든 건축 미술 디자인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MoMA 뉴욕  Ron Arad 회고전


직지를 금빛 씨앗으로 보고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열어 놨는데,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 소중하고 다른 면도 많아서, 하나의 흐름이 있는 이야기라기 보단 다양한 단편소설집과 같은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더 크게 세 개의 챕터로 나눴지만, 이안 살아있는 해석들이 전시의 재미를 가져왔음 했습니다. 그래서 론 아라드는 이를 아우르는 표지와 같은 역할로, 그리고 지속 가능하게 제가 떠나고, 조직위의 많은 멤버들이 떠나도 계속 생명력을 갖고 직지 코리아를 알릴 - 마케팅 언어로는 “닻과 같은 상징적인 대형 작품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디자인할 사람으로 누가 적합할까 생각하다가 론 아라드가 떠올랐습니다. 앞서 말한 자유로움을 가졌지만 재료의 상징성을 그 누구보다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디자이너로서 론 아라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론 아라드에게 메일을 썼습니다.

한국에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직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구텐베르크보다 수십 년 앞선 지금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다. 이 책을 보면 “날일”자가 뒤집어져 3번 찍혀있다. 오히려 이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했다는 사실이 되어다.
세계가 알고 있는 구텐베르크 이전에 한국에 78년 전에 이미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 존재하고, 그 전에도 인쇄되었다는 단서들이 나오고 있다. 최초의 발명가는 누굴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하다가 큰 가능성을 포함한 씨앗으로서의 <골든시드>라 정의했고, 이 일련의 발명과 재발견의 이야기를 전시로 풀고 싶다.

그러고 보니 칸에 가면 황금종려상이 있고, 베니스에는 황금사자상, 그리고 미디어로 최고 영예의 상은 골든 리카 이 있습니다. 청주에 <골든시드> 상이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질까 상상했습니다. 인쇄의 상은 이미 유네스코 직지상이 있는데, 골든시드상은  폭넓게 직지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서의 청주 플러스 직지가 바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플랫폼 아닐까라는 생각에 -   상을 준다면  아라드 같은 사람이 받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날 오후에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영국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정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오 마이갓. 땡큐 for the call.”이라고 격양된 소리로 전화를 받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론 아라드는 직지가 인간 사이의 여러 가지 소통을 가능캐한 매개체인 "책"임을 상징한다 주목했고, 책을 들고 고민을 하다가, 뒤집어진 책 모양이 그 자체로 한국 한옥의 기와지붕을 연상시켰다 했습니다. 또한 사람인자를 표현한다는 것을 주목했습니다.


직지 파빌로 온 의 상징성과 그 후에 사용할 목적을 담은 디자인 브리프를 받고 조직위와 긴밀이 상의하면서, 역시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지붕이 있는 "쉼터"로서의 기능을 강조해달라고 했기에 한정된 예산 안에 그 기능까지 포함코자 수정 단계를 거쳤습니다.


직지 파빌리온을 만들며, 정말 많은 분들이 고생 많이 했는데 사실 그 에피소드들을 쓰기 시작하면 너무 많은 분들을 이야기해야 해서 지면이 모자랄 것 같아요. "


일기

2016년 8월 4일

땅속 2미터까지 파야 하는 기초 공사 중에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때문에 기술자들은 얼음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작업을 계속했다. 땅파기를 겨우 끝내고 그 속에 골조를 세워서 용접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이번에는   미친 듯이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그 장대 같은 빗줄기 속에서 내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비속에 서서 전기 용접이라니! 미친 짓이다. 그런데 이런 미친 짓을 그것도 한밤중에 하는 곳은 여기 말고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2016년 8월 20일

8개의 메탈을  연결해서 휘어진 측면을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한 개의 메탈이 2톤 이라니. 포클레인과 레버러지를 동시에 작동시켜 이 메탈을 연결시켜 두 개의 거대한 면을 형성하는 작업은  흡사 젓가락으로 물건을 집어 올리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그저께는 메탈을 덮어 씌운 가죽천 위에 쌓인 빗물의 무게로 자죽천이 찢어지면서 애써 세운 메탈이 거대한 소리와 같이 바닥에 쓰러졌다. 쿵 쿠와 아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모두가 현장으로 달려갔다. 누구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신이 도왔을 것이리라. 국장님, 여러 직원 분들, 조직위의 여러 분들, 시청분들이 모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비를 맞으며 이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모든 걸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박 국장님부터 문 부장님 총감독 및 아트 드렉터 모두의 표정은 어둡고 무거웠다.


그 비속에서 망연 자실 한 자세로 30분을 서 있었을까?  땅에 떨어지면서 휘어버린 그 철골조 물을 원상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분명했다. 해서 나는 그 철구조물의 일부분을 절단하자고 제안했고, 모든 작업을 위해 현장에서 줄곧 헌신해 오시던  소장님도 동의했다. 그 절단한 부분은 목재로 하자는 나의 제안에 대해 론 아라드의 작품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기로 했다. 개막이 10일 앞인데..


2016년 9월 1일


론 아라드가 히드루 공항을 떠나기 하루 전날 밤 11시, 나는 그에게 전화해서 파빌리온을 완성시키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나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잔뜩 쉬어서 그의 귀에는 흡사 쇳소리처럼 들릴 거란 생각을 했다. 원래 건축이란 게 그렇다고, 최선을 다했으니까 됐니라면서 일단 현장을 보고 결정하자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몸뚱이가 일시에 풀썩 넘어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2016년 9월 4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끝에는 반드시 반전이 따른다. 그가 처음에 제시했던 그라피티 적 디자인 대신, 여러 번 시도한 시트지가 실패한 결과 오히려 “직지” 표지와 한결 어울리는 나무 재질의 질감을 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개막 일시까지 끝내지 못한 나머지 작업은 , 직지 책자를 제본할 빨간 줄을 5팀이 타고 올라가서 페인트로 칠하는 “엔딩 퍼포먼스로”로 전환시켰다.. 그가 제시한 책 조형물은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닌가 라고 우려했는데, 관객들은 그 조형물에 환호했다.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인간의 일이다. 단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을.



이제 이 글을 맞히며


매번 전시를 만들며, 여기저기 신세를 진 기억 뿐이다.
지금은 직지 파빌리온만이 청주에 남아있다.

 
2018년과 2020년에 개최된 직지 페스티벌은 가보지 못했지만, 내게 직지는 생생한 기억이다.

전시에 왔던 아이들에게 어떤 하나의 꿈의 씨앗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승민 큐레이터 (슬리퍼스 써밋 & 이스카이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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