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글로 발행하는 마음에 대하여
나란 사람은 성실의 벽돌을 쌓는 일이 어려운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었다'. 나도 이제는 마음을 먹고 목표를 세우기만 하면 이뤄내는 사람임을 증명해가고 있으니, 과거형으로 말해야 옳다. 나는 이제야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내 주변에서 성실의 벽돌로 성전을 짓는 사람을 여럿 봤다. 미라클 모닝의 기적을 이야기하고 스몰스텝을 실행하며 챌린지를 이어가는 사람들. 내 기준에서는 세상 어려운 일인데 루틴으로 척척 행한다. 근 10년이 넘는 시간을 출근 전 모임으로 종이 신문을 읽더니, 책으로 옮겨가고, 이제는 줌으로라도 새벽 시간을 함께 하며 각자의 루틴을 지켜가는 모습을 봤다.
이처럼 작은 벽돌을 하나씩 쌓아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을 관찰하면 한결같이 내부가 소란스럽지 않다. 조용히 움직이며, 서두르는 법이 없고, 어떤 것이든 일상다반사 삶의 일부로 끼워넣는다. 무엇을 하건 자연스럽다. 새벽을 지키고, 책을 읽어내며, 글을 써가고, 자기 공부를 하면서 들뜨지 않고 내면을 다진다. 지속하는 힘이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전작주의로 읽는 작가 장석주는 전업작가로 살면서 왜 쉼없이 글을 쓰는지를 얘기했는데 그곳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는 <나를 살리는 글쓰기>에서 자신의 삶 곳곳에서 '업'으로 삼은 '읽기'와 '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0대의 방황과 암중모색의시기, 질풍노도와 도약의 20대, 약진과 새로운 모색의 시기 30대, 40대의 좌절과 변화의 시기, 40대 중반에서 50대에 이르며 얻은 안정과 평화의 시기 곳곳, 삭막한 삶에서 다른 무엇을 하며 기쁨과 보람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빵 굽는 타자기>의 저자 폴 오스터를 언급하며 동병상련의 절절함을 투영했다. 가난은 사람을 공황 상태에 빠트리고 야수의 영혼이 되게 했다면서 가난의 실체를 고발한다. 가난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게 아니라 제 몸의 피를 팔아 빵을 사야하는 끔찍하고 참혹함이라고. 그 시간에서도 작가들을 견디게 한 힘은 오로지 쓰기밖에 없었단다.
'글쓰기는 더할 수 없는 매혹이고, 유혹이며, 충만한 삶을 사는 한 방식이다' 라 말하는 작가는 쓰기의 운명을 피하지 않았다. 몰입의 기쁨, 고독의 충만감, 인정에서 오는 소통하는 기쁨을 어떻게 포기하느냐고. 모든 작가는 쓰는 자의 괴로움과 행복을 통해서만 존재 증명을 하는 사람이라는 행복론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존재에 맞닿은 본질이 어찌 흔들리겠는가? 그런 고통을 넘은 사유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독자를 만나면 한 순간에 힘듦을 잊게되니, 마약이 따로 없을 터. 드문드문 맘내킬 때만 하는 취미가 아니라 넘쳐나서 쓰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실존 그 자체. 지속하지 않고는 닿을 수 없는 경지이리라.
2021년, 삶이 어지러워서 중심을 잡고 싶었다. 겨울부터 칩거하면서 매일 A4용지 두 장에 이르는 글을 136일간 써본 일이 있었다. 루틴화하는 일을 절대 못할 것 같았는데 글쓰기였기에 가능했다. 코칭 공부를 깊이 하던 중이라 매일 삶, 일과 연결해서 셀프 코칭이 이어졌다. 매일 떠오르는 명화 한 장을 함께 올리면서 내면의 대화를 시도했다. 코칭 역시 메타뷰의 메타인지로 참된 나를 찾도록 하는데 글쓰기로 표현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더욱 나를 객관화하고 편향적 인지 오류에 빠지는 나를 구해내기 시작했다. 산에서 미끄러져 119에 실려간 날조차 글쓰기를 거르지 않았다. 차곡차곡 쌓이는 글탑이 나를 단단하게 했다.
그 결과가 무엇을 보장해줄지 아무 것도 따지지 않았다. 그저 쓰면서 나를 알아가고 싶었다. 10일이 지나자 20일을 채우고 싶었고, 30일을 쓰게 되니 50일을 채울 수 있었다. 60일을 채우도록 내 샘은 마르지 않았고, 어느 순간에는 글을 쓰고 싶어서 아침이 빨리 밝았으면 하고 설렘을 품었다. 나는 나의 내면과 진심으로 만나 사랑에 빠졌으며 기꺼이 표현했다. 100일을 넘기고 또 36일을 더 이어갔다.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었으며 결핍의 덫에 빠져있지 않았다. 내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알았고, 풍요의 숲을 거닐 수 있게 되었다. 몰입을 경험하고, 기쁨과 감사를 오롯이 느꼈으며, 고통마저 내 자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루틴을 이어간 성공적 경험은 이제 무시로 소환할 수 있는 나의 역량이 되었다. 2023년에 브런치스토리 계정을 활성화시키고 다시 글쓰기를 해야겠다 싶어 시작한 <육코치의 100일 글쓰기>는 아주 쉽게 달성하였다. 매일 글쓰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지인들을 끌어모아 밴드에서 매일 인증 글쓰기를 100일 이어갔다. 그 100일이 끝나자 다시 시작하고 또 71일을 보냈다. 철저한 올빼미였던 사람이 새벽 루틴을 생활화하는 것은 물론, 경험을 정리한 전자책도 발간했다. 새벽 글쓰기 그룹코칭을 안착시켜 3기를 운영하며 루틴을 실천 중이다. 이런 변화를 브런치스토리에 담아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을 브랜딩 코칭을 한다.
나는 글을 통해 나를 구원하고 타인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시스템 안에 나를 배치했다. 브런치북을 두개 발행하면서 월요일과 목요일을 연재일로 잡아뒀다. 책임감 강한 나를 알기때문이기도 하고, 전문성을 갖춘 콘텐츠를 만들어두고 싶기도 해서다. 원래는 10편 정도만 쓰고 말려 했는데 매일 글을 쓰는 중에 영감이 터져난다. 소재를 20여 개 찾아두고 한편 한편 써나가고 있다. KSC,PCC로서의 책임감과 더불어 코치다운 코치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단타성이 아니라 한가지 주제로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야말로 전문가성을 보장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제 나는 더 이상 비구조적이고 자유롭기만 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목표를 세우지 않았을 뿐. 코칭 중에 계획하고 도출한 방안들을 잘 실천하며 벽돌 쌓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런 마음이면 머잖아 나만의 성전을 짓는 날도 멀지 않겠지? 연재는 확실히 힘이 세다. 몰입과 깡의 지구력을 길러주니......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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