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자녀 디자이너 Apr 27. 2024

소매치기

INFP의 용기


"난 다 봤어!!"


지하철 3호선 안국역 플랫폼에서 인파에 휩쓸려 계단을 오르다 멈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떤 아주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 이놈아!" 하며 수많은 인파틈사이로 어떤 사내를 고 계셨다. 무슨 일인가? 하고 눈여겨보는데 그 사내는 계단실에 꽉 찬 인파로 빨리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툭 발 앞으로 떨어뜨렸다. 지갑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조건 반사인지 무조건 반사인지 모를 만큼 내 의식을 거치지도 않은 듯이 나도 모르게 그 수상한 아저씨의 어깨를 두 손으로 찍어 누르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범죄의 현장을 고발하며 상황을 방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는 아마도 IMF의 상처가 다 아물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나이는 마도 20대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즈음인 거 같은데 한국에서 보기 힘든 체격 (키 190cm)의 사내가 그것도 계단 한 칸 위에서 자신의 어깨를 누르며 당당하게 다 봤다고 하는데 아무리 닳고 닳은 소매치기라도 조금 쫄지 않았을까?


그 순간.

아주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으며 "이 나쁜 놈!" 한마디를 남기시곤 휙.. 군중으로 사라지셨다. 아주 빠르게..

나는 여전히 그 아저씨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고 그 많던 인파는 서서히 옅어져 점점 결국 둘만 남게 되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아저씨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않고 있었던 거 같다.


'아 어쩌란 말인가?'

피해자도 가해자도 증명할 길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형국.


뭐... 별 수 없지 않나? 결국 잡았던 어깨를 스르륵 풀고 나는 뒤로 돌아 오르던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원래 가려던 출입구 쪽으로 가지 않고 긴 복도를 뺘른 걸음으로 건너 아주 멀리 반대편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아저씨 역시 나와 마주칠걸 걱정했는지 그 먼 입구 계단 쪽에서 또 나타났다. 그리고 옆 파트너로 보이는 다른 사내가 한 명 더 있었다. 역시나.. 갑자기 주머니에 면도칼 하나쯤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겁이 났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마치 내가 죄를 지은 사람인양 눈을 깔았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어렴풋이 들렸는데 그들 역시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져서 뛰어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을 수 있었다.


'아... 이게 뭐람!..'

어디서부터 후회를 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도 모르겠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나서서 그 위험한 인물의 어깨를 두 손으로 찍어 눌렀던 용기(객기?)부터 후회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나이도 있는데 다시는 이런 후회를 만들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저 끝으로 한참 걸어 벗어나려 했건만..


이전 02화 로즈마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