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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May 18. 2024

아무 때나 밀려드는

죄책감

스트레스가 가득한 날들이었다.

과도한 업무. 과도한 요구. 과도한 집착. 과도한 방종에 온통 둘러 쌓여 어디부터 살펴야 할지 하루종일 허둥대다 보면 방전되고 허무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죄책감은 아무 때나 밀려왔다.




중학교 1학년 보이스카웃에서 캠핑을 갔을 때였다. 생소한 버너와 코펠에 코찔찔이 중학생들이 저녁을 해 먹겠다고 부산한데 메뉴는 꽁치통조림으로 끓이는 김치찌개였던 거 같다. 아 하필.. 나는 지금도 비린내가 조금만 나 생선을 못 먹는데 그때는 생선 비늘만 봐도 역하던 시기였다.


보이스카웃 단장을 하셨던 체육선생이 생선에 머뭇거리는 나를 보더니 '음식을 가리면 못쓴다' 정도의 훈육이 아니라 다짜고짜 자기 앞에서 꽁치 찌개 한 그릇을 비우지 않으면 무릎 꿇은 채로 밤을 새우게 할 기세로 나를 몰아세웠다.


그 체육선생님은 지금 생각하면 참 기가 찰 정도의 교육관과 인성을 가진 양반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교무실이 있는 학교 1층 복도 끝쪽에 있던 체육 교사실에서 예쁘장한 여중생 둘이 그 여린 손가락으로 그 선생의 어깨를 마사지하고 있던 광경은 무개념 중학생의 시선에도 참 불편하고 어색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바로 옆자리에 나이도 지긋하신 여자 체육선생님도 그 분위기에 전혀 어색함 없이 화기애애하게 같이 계셨으니, 그땐 참.. 혼돈의 시대였다고 할 밖에..


여하간 어깨마사지는커녕 나와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넨 적 없던 체육선생께서 왜 갑자기 나의 편식이 그렇게 안타까우셨는지.. 결국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눈물까지 쏟아내며 거식 투쟁하는 나를 걸스카웃을 포함 애들이 다 밖으로 쏟아져 나와서 구경하도록 만드셨을까? 내 인생에 가장 쪽팔렸던 순간 베스트 5안에 들 이불킥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치욕적인 사건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그 사건의 배후에는 우리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중학교 3년 내내 어머니 회장을 역임한 우리 어머니에게 선생님들공부도 품행도 그저 그랬던 '나'라는 학생에게 대하는 것보다 훨씬 호의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일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런 어머니를 상당히 못마땅해하며 중학교 시절을 보냈고 사춘기였을 그 시절 반발심으로 어머니의 바람과는 다르게 학교에선 오히려 더 아웃사이더 기질을 보였다.


사건은 유년기에 길 건너 교회집 아들과 싸우고 울고 들어온 날 지하실로 끌려내려 가 사내가 뻑하면 운다며 어머니에게 더 맞았던 사건 보다도 더. 혹은 그다음으로 어머니에게 섭섭했던 사건이었는데 어떻게 겨우 이걸 생각해 냈는지.. 기분이 좀 나아지는거 같았다.


결국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나서 마 지나지 않은 날. 문득 이렇게라도 기분이 좀 나아지면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인지 절망이지 뭔지 모를 감정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와서 벌건 대낮 아무도 없는 계단실에서 느닷없이 엉엉 우는 거 보단 낫지 않나?  그리곤 또 아무 일도 없는 거처럼 미친놈처럼 이런 식으로 라도 버티며 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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