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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May 25. 2024

19살

네 탓이 아니야!

회사 대표님을 모시고 팀원들이 점심을 먹는 흔치 않은 기회가 있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누군가 차를 사려고 마음먹은 이야기를 꺼냈는데 의외로 남녀 모두의 호응을 얻으며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차는 좋은 차를 사야 한다며 다들 외제차를 선망할 뿐 아니라 실제로 외제차를 구매하는 사람 우리 회사에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같은 회사를 다니는 나는 왜..) 각자의 드림카를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왜 볼보는 운전하고 있는 나보다는 차 밖에 있는 보행자에 더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우스개 소릴 했다.


'밖에 있는 사람이 무사해야 나도 무사하지!'라는 말을 내가 했는데 이어 제일 고참인 대표님이 직접 대인 사고를 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


어디선가 좌회전을 하려고 비어 있는 1차선으로 속도를 줄이며 다가오는데 갑자기 옆 차선에서 튀어나온 소년 하나를 가볍게 받은 사고였다. 그 아이는 차에 밀려 한번 떴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바람에 어깨뼈 골절을 당해 자동차 보험 처리 및 위로금까지 줘야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듣는 동안에 나는 어떤 장면이 떠올라 계속 다른 생각을 했다.


내 경험을 얘기해도 될까? 할까 말까.. 서먹한 자리에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그분의 얘기가 거의 끝나나 싶을 때 '그런 경우 좌회전을 하는 차선만 비어 있고 다른 차선은 차가 밀려 있어 시야가 확보가 안되어 정말 위험해요.' 라며 나의 이야기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시작 됐다.




19살 재수 시절에 격은 이야기이다.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으니 나는 내가 누구를 친 게 아니라 거꾸로 내가 차에 받혔던 사건이다.

때는 아마 짝사랑의 열병에 휩싸였던 시절이었었고 결국 용기를 못 내고 아무 소득도 없이 학원을 마치고 토요일 한낮 집으로 터덜 터덜 돌아오는 길이었다. 


뭐에 홀린 놈처럼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정체되어 서있는 차 사이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시 비어있던 좌회전 차선(1차선)으로 달려오던 봉고차가 나를 받아 버렸다. 기사분은 안 그래도 조금 낌새가 이상하여 속도를 줄이 중이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나중에 했다.


19살. 돌도 씹어 먹는 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차에 받혔는데 무사할리가 있었을까? 순간 본능적으로 왼쪽 팔꿈치를 달려오는 차 쪽으로 향해 몸을 막았다. 빡!!! 하고 큰 소리가 났었고 내 몸은 반대 방향으로 몇 m  나 튕겨나갔는데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에 팔꿈치의 고통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충돌한 자동차의 상태였다. 기억하기로는 봉고차의 전면유리와 차체가 접합이 되는 그 선상을 내 팔꿈치가 가격(?)을 한 셈인데 그쪽 철판도 조금 우그러 진 거 같았고 무엇보다 유리가 쫙하고 깨진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인근 시장에서 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두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반응을 했다.

충격을 입은 왼쪽 팔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엉거 주춤 서있던 나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황당하게도 내 몸에 대한 걱정이나 운전자에 대한 원망 이 아닌 가 부서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갈까?'였다. 평소 얼마나 이상한 짓을 하고 다녔길래 무슨 일인지 파악도 하기 전 도망칠 생각부터 떠오를 수가 있는 건 아니고 (물론 짝사랑 여자애 생각으로 머리가 온통 꽉 차 있던 것에 대한 불경스러움은 있었으나..) 나는 기의 순간 어떤 처신을 해야 옳은 것인지 금방 판단이 서지 않는 미숙하고 어린 그리고 조금 멍청한 미성년자였을 뿐이었다.


자동차 유리는 여간해선 깨지지 않는 다는데 혹시 그때 내가 착각했던건 아닐까? 하고 한번 찾아봤다. 당시 내 팔뚝은 순간적으로 시베리아 특전사 주먹의 위력을 발휘 한게 분명하다.


놀라서 뛰어나온 운전자 아저씨에게 나는 연신 몸을 굽신거리며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팔을 움직여 보라고 하셨는데 매우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써 팔을 굽혔다 폈다 반복해서 보여드리며 아무 문제가 없다며 안심시켜 드렸다.


아저씨는 주위 사람들을 조금 의식하시면서 만 원짜리가 가득 들어있는 두툼한 지갑을 꺼내더니 그중에 만 원짜리 딱 한 장을 꺼내 내게 집에 가는 길에 파스라도 사서 붙이라며 주셨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는데 억지로 나에게 돈을 건네주고 서둘러 가셨다. 그 와중 어떤 젊은 분이 내 옆으로 와서 지금 뭐하는거냐며 빨리 운전자 데리고 병원으로 가보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주셨는데 나는 부모님까지 일이 알려져 커지는 것도 싫고 그저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괜찮다며 무시하고 팔꿈치를 부여잡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미성년자를 훈육할 때 네 잘못이 뭔지 알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생각이 있어 없어?라고 다그치는 경우를 본다. (생각해 보니 나도 아이에게 그럴 때가 많았다.) 이 어이없는 에피소드에서도 내가 얼마나 상황 판단이 안되었었는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잘 못을 해서 도망쳐야 할 상황인지, 누워서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지, 전혀 파악을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이 된 지금으로선 어이없기 그지없지만 상황 판단 능력과 경험이 없는 미성년자의 입장은 당시 어쩔 수 없던 것이다.



먼저 자동차 사고 얘길 꺼냈던 대표께서도 내 얘기를 듣더니 자신이 사고를 냈던 그날도 차에 치인 아이가 비슷한 반응을 했었다고 다. 자기는 안 다쳤고 어머니가 알면 안 되다는 둥의 황당한 얘기를 하던 그 아이가 정말 어리고 미숙하구나 싶었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아이도 나도 분명 본인의 탓을 더 많이 했었다는 것이다. 긴 실제로 보행자의 실수로 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지만 차와 사람이 부딪힌 경우 약자인 보행자를 무조건 피해자로 보는 상황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하게 보이는 것 인지도 모른다.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건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를 더 걱정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다고 하는 말과 반대로 악하게 태어났다고 하는 말 모두 들어맞을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말이 맞는지, 이 두 청소년의 경우만 가지고 본다면 어찌 인간의 본모습이 이기적이고 악하다 할 수 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부연 설명이 없어도 우리 모두 청춘을 겪어 봤기에 고민과 갈등과 시련 모든 것에 있어 판단이 어렵고 서툴고 낯설고 여린 살들이 아직 굳어지긴 전의 청춘은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쩌면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속엔 남의 탓, 사회 탓을 먼저 하지 않온전히 아픔을 스스로 감당하인생에 있어 아주 짧은 시기가 아닌가 하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조금만 상황 판단이 되었더라면..

용돈이라도 좀 더 두둑이 챙길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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