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에 틈틈이 나의 피지컬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어서 기억하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한국의 평균에 비해 많이 튀는 외형(?)을 갖고 있다.
우선 키가 190cm가 넘고 서른 후반부터는 턱수염도 기르고 다녀서 동그스름하고 깔끔한 동양인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늘 너의 조상은 중동이나00 스탄 이 뒤에 붇는 나라에서 왔을 거라는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마른 체형이었던 20대 보다도 오히려 힘이 더 넘치던 30대 중후반에는 회사행사에서 무슨 운동 경기만 하면 마치 일반인들 사이에 체육인이 끼어서 운동을 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어떤 날은 남녀 직원이 섞여 피구를 하였는데 내가 공을 잡으면 모두 위기감에 장내가 술렁이곤 했다.
'최모 소장님은 앞으로 공을 왼손으로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메가폰을 잡은 친구가 진행자의 권한으로 선언을 해 버렸다.
'왼손?나 어렸을 때 왼손잡이였는데...'
하고 왼손으로 또 어마어마한 속도의 공을 뿌려대기 시작했고 좁은 사각의 공간에 갇힌 친구들 특히 여성들은 이리저리 마구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런데 그 순간. 뻑! 하고 한 젊은 여자동료가 얼굴에 공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아니 피구공이 무슨 야구공도 아니고 그렇게 빠를 리가 없는데 아무리 운동신경이 없어도 그렇지 그걸 얼굴로 받다니?
그러나 이유가 있었다. 나의 왼손 투구(?)는 속도는 오른손에 못지않게 빨랐지만 제구력이 없어서 공을 던지려는 방향과 공이 뿌려진 방향이 전혀 다르게 날아가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 친구는 마치 내가 노룩 패스를 하듯 시선과 다르게 뿌려진 공에 속아 방심하고 있다가 그런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화기 애애하던 회사의 야유회는 순간 싸늘하게 식고 대표님까지 놀라 일어나서 그 여직원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에게 살살하라는 야유를 받던 나의 심정은 어땠을지 상상이 되시나?
이후 회사의 연중 야외 행사에서 '피구 게임'은 사라졌다.
그런데 그 후로 얼마 되지 않아축구 행사가 또 사라졌다.
이유는 축구경기를 하다가 미끄러져 나의 발목이 부러졌기 때문.. ㅜㅠ
이유는 어이없게도 구두를 신고 축구를 했던것인데 당일날 킥오프 시간에 선수 숫자가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지자 본부 임원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나를 긴급 투입했고 나는구둣발로 그 미끄러운 인조잔디 구장을 엄청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였다.
그날따라 왜 그리나에게 단독 찬스가 많이 주어지던지..
할 말이 없다.
모두 내 의도와는 다르게 돌아갔던 일..
그 후 나에게 '연쇄 스포츠 살인마'라는 별명이 생겼고 어떤 신입여자아이는 엄마와통화 중에'통키'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건 확실히 나를 뜻하는 말 같았다.
그때 함께 했던 동료들 중 이젠 많은 사람들이 퇴사하고 위의 에피소드들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되어있다.
그런데 나를 통키라고 부르던 여자애를 포함 얼마 전오랜만에OB들과의 만남에서 또 그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이제는 조금 웃으면서 여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느낌이 좋은 사람과 인연을 갖게 되고 서로 알게 되고 친하게 되는 시간들은 인생에서 있어 즐거운 순간들이다. 특히 내가 나이가 들 수록 기회가 줄어드는 젊은 사람들과의 교류는 좀처럼 갖기 힘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젊은 그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만 내가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 걸 확인하는 순간 오히려 그들은 나이 든 사람들 보다 마음을 더 크게 열고 다가온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외에도 자신들에게 없는 경험과 원숙함이 새롭게 느껴져서 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댓말이 깍듯이 존재하는 언어적 특성과 과거로부터 내려온 장유유서의 유교문화의 흔적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엔 세대 간 격 없이 지내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존재한다.
젊은 그들의 커뮤니티에 온전히 진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하게 된 지 오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언어, 모습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선을 지키고 주의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무장해제를 하고 밝게 다가오는 녀석들은 너무도 좋은 기운을 느끼게 해 준다.
나도 최선을 다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더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한계는 있고선택의 순간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들과 나사이의 관계에 있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나는 당연히 내 기준에서 선택과 판단을 한다. 그러면 결국 언제나 어느새 촘촘히 엷어진그들과의 잔 가지를 나는 쳐내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신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다.
친근한 관계. 우리 사회에서 친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친근한 관계에서 행해지고 지켜지는 것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아마도 그 시절 내게도 존재했을지도 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