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신 결혼준비기

날씬하지 않아도 행복해

by 정주희


갖가지 신조어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여기 웨딩동에서도 물론 그렇다.
웨딩패키지라는 말 대신 스드메 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을 때 토토즐을 쉽게 쓰던 세대였음에도 어찌나
낯설었는지. 예신(예비신부), 예랑(예비신랑),스촬(스튜디오촬영) 등등.

그중에 오늘은 '뚱신' 에 대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뚱신 - 뚱뚱한 신부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말해두자면 절대 나쁜 의미로 쓰는 단어가 아니다. 적어도 이 글에서는.
날씬하지 않은 상태를 뚱뚱하다고 하는건데 그게 왜 비하의 어휘가 되겠는가?!!)


25013162_1501849369864086_3069779964455813120_n.jpg




언젠가 한번, 아주 귀여운 얼굴에 살이 많이 찐 신부님과 그와 비슷한 신랑님이 상담을 오셨다.
그분은 66,77,88 이런 사이즈 말고 정말 큰 경우였다.
그분들은 결혼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상담을 오셨고, 그래서 정말 다급했다.

"스케줄 안되는 곳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되는 곳들로 가되,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찾아보아요."

그 선한 인상의 신부님은 통통한 얼굴에 눈이 묻히도록 웃으며 그저 네네 하기만 했다.
아 귀여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사랑스러운 순둥순둥 신부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피부가 엄청 뽀얗고
잡티가 하나 없이 맑았다.

오, 북유럽에서 오신 거 아니에요? 진짜 피부가 어쩜 이렇게 결도 예쁘고 톤도 좋고 모공은 아예 없는 거 같아요, 우린 피부가 큰 장점이니까 드레스 컬러나 톤을 피부를 잘 살려줄 수 있도록 골라봐요!라고
내가 먼저 신나서드레스 사진들을 꺼내며 이런 컬러는 크림 컬러인데
이 경우 어쩌고저쩌고 설명을 하다 신부님을 보니까
그 하얀 피부에 홍조가 아주 연한 핑크빛으로 올라서 어머 복숭아 같았다.

우리는 드레스도 잘 고르고 (그 신부님은 사실, 그저 내가 이러저러해서 이게 좋을 것 같다고 하면 그저 헤헤헤 웃으며 네 그렇게 해요. 하셨다. ) 어느덧 촬영 날이 되었다.
헤어 메이크업 받고 신랑님과 함께 포즈를 취하며 연신 그 복숭아 같은미소를 뿜어내시는데
너무 행복해 보여서 진심으로 나도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어느 정도 촬영에 적응되셨을 때 이제 그만 가보겠다고,
지금처럼 예쁘게 마저 하시라고 인사드리는데 준비한 선물을 꺼내주시는 거다.




1.jpg


손글씨 카드도 있었다. 고맙다, 감사하다 얘기가 많았는데
글쎄, 날짜도 급하고 신부님도 무조건 예스 예스 하셔서 크게 힘들거나 애쓴 점이 없는데
뭐가 그렇게 고맙다고 하시는지, 제가 더 고마워요, 잘 따라와 주시고 다 만족스러워해주셔서.
하고 인사하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항상 과묵하던 신랑님이 따라 나오셨다.

"사실, 저번에 박람회에서 계약을 했었어요. 잘 모르니까 그냥 좋은가 보다 했는데....
그때 플래너님이 제 여자친구에게 대놓고 무시하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맞는 드레스 찾으면 다행이다, 머리는 그냥 얼굴 작아 보이는 걸로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뭐 이렇게요.
그런데 플래너님이 항상 예쁘다고 해주시고, 너무 친절히 대해주시고 골라주시는 것들도 다 좋아서
제 여자친구가 상처받은 게 좀 나아진 거 같아요. 너무 감사해요"

어머나, 같은 웨딩플래너로서 그 박람회에서 만났다는 플래너가 너무 창피했다.
세상에 지는 얼마나 이쁘고 날씬해서! 아.... 진짜 이러지들 좀 말자... 싶은 마음과
저 선하고 웃음 많은 신부가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그분들 마지막까지 마음 안 다치시게 더더 신경을 쓰고 노력했던 기억이다.

그 이후로는 뚱신 분들을 만나면 그때 그 신부님이 생각나서 말 한마디, 단어 하나 더 신경 쓰게 되고
업체에도 미리 더 노련하고 배려심 깊은 스텝들로 배정해달라 신신당부하고 있다.
다시 그 복숭아 신부님 얘기로 돌아가면 결혼식 때에는 무겁지 않고 화사한 베일에
상체는 깨끗한 실크 위로 잔잔한 레이스가 있는 드레스를 입고
꼼꼼하고 맑은 피부 표현에 색조는 최소화해서 복숭아 신부님의 매력을 최대한 살렸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신부님으로 연신 웃어대며 행복한 모습으로 결혼식 잘 마치고 햄뽁고 계신다.



emilyruthless_34983409_180891495957700_6256398445410516992_n.jpg

다른 경우, 외국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온 신부님 한 분을 진행할 때이다.
감각 있는 신부의 친구가 드레스 골라주러 함께 오셨다.
우리는 드레스숍에서 신부의 드레스를 함께 골랐다.
날씬하지는 않으셨지만 정말 스마트하시고 드레스 보는 감각도 좋은,
유쾌한 성격의 친구분이었다.

일 년쯤 지나고 그 친구분에게 연락이 왔다. 결혼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 뵙기로 했다.
친구분 드레스 고를 때 보다 좀 더 사이즈가 커진 거 같기도 했는데
감각이 남다른 신부님은 역시 특별한 계획이 있으셨다.

드레스는 내 맘대로 하고 싶다고 하시고는 준비해온 의상을 꺼내셨는데 오! 놀랍고도 신박한 기분이었다.
그건 바로 스판끼가 짱짱한 소재로 만들어진 하얀색 레이스(쫄) 티였다.
어머 완전 쭉쭉 늘어나는 그 옷은 신부님이 편안하게 입을 수 있었다.
그 위에 보통 드레스에서 많이 보는 볼가운, 그러니까 발레리나처럼 확 퍼지는 스커트를 매치하고
싶다고 하시는 거였다. 오마이갓,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유레카!!!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야 하는 법, 우선 두 군데 정도라도 투어를 하자고 말씀드렸다.

가서 입어보고 혹시 그보다 좋은 게 있는지 찾아보고 이 레이스(쫄) 티랑 스커트도 매치해보자고 말이다.

그래서 투어 날 드레스를 입어봤는데 그 신부님은 마치 신부모양의 봉제인형처럼

new_style_aob_38705298_2203679779915890_3009590915539927040_n.jpg 물론 몸매는 다르지만 니트와 풍성한 드레스스커트를 매치한 스타일링이 신부님의 스타일링과 흡사하다.

동글동글 귀엽게 이것저것 잘 어울렸다.
하지만 신부님이 준비한 그 레이스 티 위에 풍성한 발레리나 치마를 매치하고 머리는 단발 그대로 하고

짧은 베일로 러블리함을 좀 더 끌어올리자 그냥 딱 그녀스러움!이 최고로 발현되는 딱 그녀같은 최고의 스타일링이었다. 그때 드레스 숍 원장님도, 나도 거기 있던 스텝들도 귀엽다!!를 백 번쯤은 한 거 같다.

결혼식 당일! 웃으면 눈이 없어지는 눈, 까무잡잡한데 마치 왁스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피부
(아, 도대체 뚱신님들은 왜 그토록 피부가 좋으십니까?!!!부러워요!!)
메이크업은 피치 컬러 볼터치에 까맣고 모질 좋은 단발머리를 예쁘게 드라이했더니
귀여운데, 세련되고 저토록 흔하지 않은 유니크한 스타일링을 위해서는 살집이 좀 있는게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까지하게 했더랬다.

그 멋진 신부님은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무려 한 달, 아니 한 달보다 길었나?
암튼 오래 간다고 하셨다. 이직 기간이라 가능하다고 하셨다.
놀러 오라고 진심으로 말씀해주셨지만 갈 수 없는 마음엔 놀리십니꽈?! 하면서
모두 함께 웃었던 행복한 웨딩데이 기억.


plussizehannah_39381482_278501672743731_2859330887688912896_n.jpg




상담 전화를 신랑님이 직접 하고 상담 예약까지 신랑님이 잡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그런데 상담까지 신랑님 혼자 오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하지만 상담 때도 혼자 오시고 그래서 신부님을 아예 못 본 상태에서
신랑님에게 드레스며 헤어 메이크업까지 다 설명하고 아.... 이해되셨을까? 하는 걱정이 컸던 경우다.
그분들은 어쨌든 나에게 신뢰를 보여주시며 계약까지 하셨는데 업체를 정하고 일정을 잡고 드레스 투어(숍 정하기 위해 몇 군데 가서 입어보는 일정)를 할 업체를 정하는 모든 과정에서 신부님의 목소리 한 번을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신랑님에게 전화가 왔다.

"저희 웨딩촬영을 취소해주세요."

신부님이 계속 나타나지 않았던 것, 그리고 드레스 사이즈는 얼마까지 있냐는 것 등을 계속 물으신 것으로 보아
촬영을 취소하고 싶은 이유가 짐작이 갔다. 혹시,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까 봐 그러세요?
역시나 그렇다고 하신다. 신부님이 의기소침해있다고. 찍어도 건질게 없을 거라고.
그래서 얘기했다.



"얼마든지, 언제든지 취소해드릴 수는 있는데 조명도 전문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작가가 찍을 것이고 리터칭도 전문 디자이너들이 해주실 텐데 이때 아니면 연예인이 아닌 이상 정말 제대로 된 인생 샷을 찍으실 기회는 사실, 평생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텝진을 믿고 조금 용기 내주시면 평생 뿌듯할 사진 갖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 얘기 후 다시 촬영을 진행하기로 하셨고 드디어 드레스를 처음 입어보는 날,
전설 속의 용처럼 있으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던 그 신부님을 만나는 날이 왔다.
아침부터 너무 긴장되고 떨렸던 기억이다. 진짜 예쁘게 맞는 드레스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때문에
이미 여러번 전화해놓았지만 다시 전화해서 두번 세번 신신당부 했다.

"신부님이 소심한 성격이신지, 자신감이 없어서 저를 만나러 상담조차 안오신 분이에요. 가장 노련한 실장님이 나오셔서 배려 넘치는 그리고 진짜 잘 찾아주시는 진행 부탁드려요"

그리고 약속시간. 두근대는 맘으로 문 쪽만 보고 있었는데 신부님이 들어왔다.

두둥




어머나어마나.... 세상에 세상에 이건 반칙이다.
정말 그냥 약간 통통하기만 한 절대 뚱뚱하지 않은 눈이 아주 커다란 신부님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 정도인데 그동안 그렇게 나를 걱정시키신건가? 안도의 마음이 번지며 나도 모르게 평생 처음 본 신부님
등짝을 찰싹찰싹 때렸다. 아니 진짜 드레스 아주 너무 넘치게 이쁜거 입으실 수 있게 해드릴께요.
저를 두달 내내 걱정시키시고 너무하세요. !

생각보다 예쁜 드레스를 입어보며 신부도 안도하고 긴장도 풀리고 그렇게 행복해하는 신부를 보며 세상 착한 신랑님도 행복해하고 무엇보다 날씬해보이는 드레스를 피팅할때마다 내 팔뚝에는 계속 소름이 돋았다.

어머나 너무 좋아요!예뻐요!
우리 셋 모두 드레스투어가 끝날 때 입이 귀에 걸려서 연신 웃으며 웨딩촬영, 본식 모두 예쁘게 하자고 화이팅을 했다.

"신부님, 진짜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눈도 엄청 크시고 동글한 인상이 엄청 어려보이고 드레스 입을 때 완전 날씬해보이고 이렇게 걱정하실 이유 1도 없으세요. 지금도 예쁘니까 기운내서 동기 갖고 우리 3kg만 딱 빼요. 그러기만 해도 정말 드레스핏 완벽해질꺼에요. 너무 예쁘시니 욕심 납니다 ㅎㅎ"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고 최고로 걱정되던 투어를 최고로 유쾌하게 마쳤다.
그 신부님은 다이어트에 계속 성공해서 촬영때는 훨씬 날씬해졌고 본식때는 더 날씬해져서 아주 행복한 신부로
결혼식까지 하셨다. 만나는 동안 점점 더 자신감을 찾았고 웨딩을 즐기는 해피브라이드가 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신랑님도 나도 너무 행복했다. 결혼식날 완벽하게 만족하신 두 분과 작별인사를 했는데
그 날밤 늦게 하와이에서 그 신부님께 전화가 왔다. 모든 게 만족스럽게 걱정과 달리 잘 끝나고 보니까
내 생각이 많이 났다는 것이다. 세상에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허니문 첫날밤에 웨딩플래너에게 전화라니....
이것만큼 큰 감사의 마음 표현이 어디있겠는가... 물론 당연히 그 분들도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신다.


결혼식날 신부님들께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미인으로 행동하는 여자는 외모 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이고, 위축되고 의심하시면 미워보여요.

신부대기실에서는 당연한 마음으로 나는 오늘 충분히 예쁘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시며

하객들을 대하세요. 우아함이 저절로 나올거고 훨씬 더 아름다우실꺼에요.

사람들이 예쁘다고,칭찬하면 '고마워' 라고 답하세요. '나 안 이상해?' 하고 묻지 마시구요




자존감, 자존감, 유행처럼 떠들어대는데 결혼식, 그러니까 어른이 되는 첫 관문 결혼준비 할 때
무엇보다 필요한게 자기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마음, 자존감인 것 같다.
지금 곁에 나만 바라보는 이 사람이 나랑 결혼하고 싶다는 것은 이미 그 눈엔 내가 아름다운 것이다.
결혼을 하려는 그 풋풋하고 설레는 마음을 의심하는데 1분 1초도 쓰지말고 사랑하고 사랑받는데 집중하면서
즐겁게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다, 당신이 웃으면 더 아름답다.


32343629_2056040987968813_5031770129629708288_n.jpg





































































keyword
이전 05화어른이라서 하는게 아니고 하고 나서 어른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