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결혼이라는 오지탐험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 결혼이라는 이상한 것

by 정주희

결혼 참 쉽지 않다.

일하는 시간 빼고 사적인 시간은 섞지 않아도 되는 직장 내 팀원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어려운데

결혼은 나랑 너 말고 (나도 100% 이해가 되지 않는) 내 부모님과 너의 부모님 친척, 친구들까지 갈등 거리 투성이고 출근도 퇴근도 없이 365일 24시간 지속되는 관계가 아닌가? 휴가도 잠정적 은퇴도 불가능하다.

GO 아님 STOP 뿐.


결혼은 생활이고 싫다고 외면하거나 힘들다고 포기할 수가 없다. 처절하게 고민을 해야 하고 싸워야 하고 화해해야 하고 겪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은 그렇게 자꾸만 어른으로, 어른으로 우리의 키를 늘려버린다.

물론 이혼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결혼생활이 성공적이어도 나는 입시에 성공하거나 이직에 성공할 때 보다 성장해있을 것이고

결혼생활을 실패한다고 해도 입시에 실패하거나 친구와 절교하거나 부모님과 큰 갈등을 겪었을 때 보다

성장하게 될 것이다. 결혼은 그 무엇을 상상한들 그 이상으로 어른이 되게 한다.


남편과 나는 자주 다툰다. 우리 부부는 달달하기만 하지도 않고 배려심 넘치고 평화롭지도 않다.

결혼 준비를 할 때부터 그랬다. 결혼식 6개월 전 후로는 정말 전쟁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정신줄 놓고 싸울 때 남편이 꺼내 비꼰 우리 가족 얘기에 상처 받아놓고 다음 싸움에서 겪어봐서 아는 그 잔인함으로 남편을 상처 주려고 남편 가족을 건드는 얘기를 일부러 할 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부끄럽다. 남을 욕할 자격이나 있나? 싶다.


내가 나만 뚫어지게 바라볼 때 보다 내가 더 잘 보인다. 남편만 집중해서 생각할 때 보다 치졸한 나에게 집중하면서 그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뭐랄까? 나와 남편은 체크무늬처럼 얼기설기 떼어놓기 어렵게 뒤섞이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렇게 창피한 것도 모르고 바닥을 치게 치사해지면서 또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게 사랑하면서 남편을 미워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을 증오하고 남편을 존경하면서 그 안에서 내 중심을 뺏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이해받기 위해 종종 거리면서 오히려 나를 더 알게 되고 나를 알게 될수록 그를 이해하게 된다.


자존감이 유행이다. 조금 움츠러드는 사람은 자존감이 없다고 성장과정을 운운하고 당당한 누군가는 자존감 장인으로 인정받는다. 이제 젊은이들은 퇴사를 하고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세계여행을 떠난다. 자신을 찾으러, 자존감 넘치는 어른이 되기 위하여.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룬 거 없이 30대가 되었다는 충격 속에 내가 세웠던 플랜이 바로 그러했다. 세계여행은 아니고 무작정 이국으로 떠나려고 잠시 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다. (그때 이국은 맥주가 맛있다는 아일랜드였다.) 그때 나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결혼을 피하고 싶었다. 결혼보다는 아직은 세계를 향해 뛰쳐나가고 싶었다. 모험에 목말랐다. 남들이 겪지 않는 이국의 모험을 잔뜩 겪어내고 어느 상황에서나 지혜로운 사람,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이 높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결혼을 하면서 아일랜드는 쨉도 안 되는 모험의 세계로 왔다. 운명과 생활, 그리고 가족이라는 천둥번개를 맡으면서 맨몸으로 세렝게티를 헤쳐 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드벤처 게임에서처럼 악당을 물리치면

그다음엔 마왕이 나타났고 마왕이 가고 나면 대마왕과 싸워야 했다. 물론, 꽃놀이 물놀이도 진수성찬 소풍 축제의 날들도 있었지만. 내 자존감은 아일랜드 말고 우리 집에서 발견되고 숙성되고 있다.

(물론 우리 집도 맥주는 맛있는 집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란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 자고 쉬는 것만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재벌도 불행하다. 최고의 미모와 인기와 재력을 갖춘 아이돌 톱스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사람은 부대끼는 관계 그 안에서 상처 받지만 사람에게 위로받고 사람에게서 회복된다.

오늘 받은 마음의 상처를 오늘 다듬어야 한다. 오늘 내 노력에 대한 인정을 오늘 받아야 한다.

밥을 챙겨 먹듯이 영양제를 챙겨 먹듯이 위로받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 건강할 수 있다.

그래서 부부는 안전하다. 아니 안전할 확률이 높은 편이라고 해야겠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가장 아픈 '적'이면서 가장 진득한 '짝'이다.


철없이 이상만 드높은 시절의 내가 진짜 아일랜드로 떠나서 나를 찾았으면

아마 그 ‘나’는 인생이 마음먹고 달려들 때 바로 내려놓게 될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관계 안에서 깨닫지 않는 나, 관계 안에서 쌓지 않은 자존감은 어쩐지 위험하다. 글로만 배운 연애 같달까?


남편이 60% 좋고 40% 지긋지긋할 때까지는 이렇게 함께 살겠지만 60% 이상 끔찍해지는 어떤 계기가 생기고 상황이 된다면 어쩌면 나도 이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신혼 시절엔 하루에도 열두 번 이혼에 대해 생각했더랬다. 6년이 지난 지금 신혼 시절만큼 열렬히 이혼을 꿈꾸고 있지는 않지만 만약 이혼까지 가는 일이 있더라도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이 남자와 전쟁처럼 살아오는 6년간 부담스러운 가족의 대소사, 스스로 책임 쳐야 하는 생활 안에서 조금은... 자랐다. 여유롭고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내 노후의 꿈에 조금은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주름도 나이테처럼 늘어나긴 했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 같은 두꺼운 책을 읽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을 깊게 알고 겪고 이해하는 것이 삶의 지혜를 찾는 과정이 될지 모르겠다.

퇴사 후 세계여행? 오지탐험? 결혼을 해버리는게 어쩌면 진짜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로의 여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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