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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밖엔 난 몰라 Nov 29. 2022

노자 형에게 보낸 가을 편지

비움의 계절 가을을 보내며~ 

아~ 노자형!                                                                                               

당신이 2500년 전 한 권의 책으로 남겨 주신『도덕경 (道德經)』을 담은 5000자 81장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올해 가을 마무리 지은 전력투구 30여 년 직장의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봅니다. 세상은 온통 새로운 시선과 관점의 빛으로 환하게 쏟아져 새로운 시야로 들어옵니다. 


아침 서리를 맞은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을 '저벅저벅' 밟으니 경쟁의 훈장과 유행의 계급장을 좇아 숨 가쁘게 달려온 내 청춘 무거운 어깨가 새벽 비에 부러져 내려앉은 단풍잎처럼 장렬하고 쓸쓸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세상의 윈리, 즉 도(道)는 채움과 비움의 영원한 순환이며, 물러나야 할 때 다음의 세대에게 물려줌을 미리 아는 것이 바로 도덕경의 순리이며, 그 순리대로 비우고 내려가 주는 행동이 도덕경의 경(經)이라고 당신은 저에게 일갈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움은 다음의 새로운 채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충고해 주셨습니다. 형이 제시한 '비움'을 생각하며 낙엽을 벗 삼아, 이번 가을 직장생활 인생 1막을 정갈하게 마무리했답니다. 


낙엽은 그냥 떨어진 낙엽이 아니라 다시 피어날 봄꽃을 피우기 위하여 흙 속 영양분을 채우는 거름이며, 장렬한 가을의 낙엽과 화사한 봄꽃은 비움과 채움의 당연한 순환 과정임을 노자 형 당신께서 한 수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의 내려놓음, 즉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곧 다가올 새로운 세계의 시작임을 암시한 형님의 책장을 덮고 묵묵히 낙엽길을 걸었습니다.


형님이 걸었던 2500년 전 개울가 가을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상선약수 물소리 따라 덧없이 무위의 심연으로 흘러가는 11월 늦가을입니다. 벌겋게 물듦의 정점을 찍은 11월의 낙엽이 줄줄이 떨어집니다. 고단한 삶의 나뭇잎들이 떨어지며 장렬하게 내려앉습니다. 2500년 전 형이 그랬듯 노을빛 물든 가을 숲길을 형이 남긴 81장의 글귀를 천천히 읽듯 제 느린 발자국 한 땀 한 땀 낙엽 바스러지게 도덕경의 숲을 헤쳐 걸어갑니다.



아~ 노자형!                                                                                                 

춘추전국의 시절 모두들 천화동인(天火同人)을 외치며 광장에서 공명심으로 내 것을 채울 때 거꾸로 노자형은 세상을 관조하며 낙엽 깔린 당신의 서재 뒤편 숲길을 걸으며 무위와 비움의 고독을 즐기셨나요? 만리장성과 불로초로 불멸의 채움을 욕망하고 연명한 진시황제마저도 인생의 모퉁이 한 가을날, 욕망의 정점을 비우지 못하고, 한 움큼 재가 되어 익명의 단풍잎으로 영영 사라졌지요!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도 당신의 간결한 말 '인생은 채움과 비움을 증명하는 순리'로서 영원한 무위의 바닷속 일엽편주( 一葉片舟) 불안한 조각배에 불과할 뿐이겠지요.


단풍잎은 늦가을 서릿발에 어쩔 수 없어 떨어지지만, 인간의 품격은 때가 오면 스스로 내려놓을 때 비로소 단정히 내려앉은 단풍잎처럼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이라고···. 당신은 마치 시대를 초월한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고 와서 메타버스(Metaverse)의 게임 속에서 저와 함께 낙엽 밟으며, 형이 저에게 말 걸어오는 듯합니다.


인간의 실존이 낙엽과 다른 점이라면, 욕망의 주머니를 풀어서 이웃과 나눠야 행복한 존재이며 신의 소리에 귀 기울여 내 것을 베풀 줄 아는 생명체이기 때문 아닐까요? 형님의 책장을 덮고 새로운 청춘의 2막을 준비하는 하프-타임(Half-Time) 시간들이 두근두근 설렘으로 저에게 남아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 노자형!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왜 이래?’하며, 심화되는 양극화와, 채우지 못한 재물과, 이루지 못한 공명심에 다치고 아파하며 아우성치는 21세기 AI(Artificial Inelligence: 인공지능) 과학기술 만능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답니다. 가속하는 환경파괴와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세상에서 젊은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 것인지 충고해 주실 건가요?   


형이 남겨준『도덕경』을 읽고 사춘기를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십 대 후반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데미안』구절이 의식의 흐름으로 떠오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이 가을 마지막으로 불러 보는 노자형!                                                               

형이 살던 곳을 등지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간 당신의 그해 가을은 어떤 가을이었나요? 당신도 저처럼 스위티-멜랑꼴리(Sweety-Melancholy: 달콤하게 우울한) 가을을 보내셨을까요? 아니면 반드시 돌아올 새 봄의 희망으로『도덕경』을 집필하셨는지요?


깊어가는 이 가을 쓸쓸한 바람소리 삐걱거리는 선술집 전등 아래 당신과 이런저런 이야기 두런두런하며 두 손으로 따신 정종 한 잔 올리는 존경의 마음 전합니다.     

  


*『노자』또는『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한다. 약 5000자, 81장으로 되어 있으며, 상편 37장의 내용을 「도경(道經)」, 하편 44장의 내용을 「덕경(德經)」이라고 한다. 노자가 지었다고 하나 한 사람이 쓴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여러 차례에 걸쳐 편집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변형 과정을 거쳐 기원전 4세기경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고정되었다고 여겨진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덕경(道德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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